남자 눈에 보이는 것과 여자 눈에 보이는 것
남자 눈에 보이는 것과
여자 눈에 보이는 것에 극명한 차이에 대해서
11층 식당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었다. 11시 40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엘리베이터 역시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심하게 고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어제 회식이 있어서 술을 과하게 먹었다거나 속이 거북해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다면, 난 세 번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 건 우리 옆에서 기다리는 두 분의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따뜻해 보이는 갈색 캐시미어 카디건
갈색에 잘 받쳐 입은 흰색 폴라티 (거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을 것 같은) 재봉선 방향으로 주름 잡힌 검은색 정장 바지 바짓단 아래로 보이는 흰색 스니커즈 운동화, 한눈에 봐도 잘 차려입은 눈길 가는 미인형이었다.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
새치라고는 없어 보였다. 대충 봐도 육십 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까지 보였다. 얼굴 화장에 공을 들였던지 목선과 얼굴색이 투톤으로 갈라진 걸 제외하면 누가 봐도 미인이라 생각이 들 정도의 얼굴이었다. 작은 얼굴 또렷한 이목구비 눈꼬리가 약간은 내려온 선한 눈매를 가졌다. 거기에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것 같은 빨간 립스틱, 나이를 어느 정도 숨기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두 분의 아주머니 중 그렇게 한 분만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한 분만 골라서 봤을 리 없지만 한 남자의 눈동자가 거기에 머무르는 건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거기엔 적당한 이유란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갈색 캐시미어 아줌마가( 그렇진 않겠지만) 자기보다 예쁜 친구와는 다닐 수 없다는 그런 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중요했던 건 두 분 중에 한 명은 상당한 미인이었고 다른 한 분은 그냥 평범한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 눈이 마주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몰래몰래 눈동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려가며 갈색 캐시미어 아줌마를 훔쳐보았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 짧은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람 구경만큼 재밌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옆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신경 쓰며 혹시나 아내에게 누굴 그렇게 쳐다보냐는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 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가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두 분에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게 지루했던지 다시 쇼핑을 하러 뒤돌아 갔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다시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 식당가로 올라갔다. 역시나 시간대가 그래서인지 식당들마다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식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일식당 앞에서 다시 그 캐시미어 아주머니와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일식당으로 들어가 앉으면서 내게 말했다.
"오빠 방금 전에 마주친 그 여자 갈색 캐시미어 봤어"
난 화들짝 놀라며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뻔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하며 누구를 말하는 거야 하며 물어보았다
"아까 2층에서 우리 옆에 기다리고 있던 갈색 캐시미어 그분 말이야. 몸에 걸친 명품만 해도 몇 천만 원이야 자기 봤어"
아내의 눈엔 여자의 얼굴보다 여자의 몸에 착용했던. 목걸이와 팔찌 머리에 둘은 머리핀과 가방 귀걸이 그리고 목걸이까지 그 짧은 시간 그 여자의 몸에 둘은 갖가지 액세서리를 하나하나 브랜드까지 놓치지 않고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 눈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나의 눈에 보인 건 그 여자가 입은 옷의 색깔과 그 여자의 화장 색과 눈동자 얼굴 생김새 이런 외모적인 것이었지만 아내의 눈에 보인 건 그 여자의 얼굴색과 입술색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그 여자가 두르고 있는 액세서리와 가방 브랜드는 정확히 기억해 내고 있었다. 우리가 보고 기억하는 사람의 첫인상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아내의 눈에는 정확히 보였나 보다. 그건 남자와 여자가 태초부터 다른 성향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 발생을 한다. 역시나 진화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시각적인 동물인 남자는 눈에 보이는 정보를 놓치지 않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디테일함 그 사람이 가진 가방과 액세서리까지는 기억해 내지 못한다.
여하튼 점심을 먹으면서 아내가 이야기해 준 캐시미어 아줌마의 액세서리는 실로 대단했다.
얼핏 눈에 보이는 액세서리류만 해도 1억이 훌쩍 넘었다.
여자들의 눈엔 이런 것들은 정말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나 보다. 왜 남자들의 눈엔 이런 게 보이지 않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딱히 분석할 만한 합리적인 대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남자의 눈에 보이는 것과 여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 같을 수 없다는 것엔 달리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것을 보고 이렇게 다르게 분석한다는 데엔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