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장암으로 돌아가신 친구 장인어른
아름다운 이별, 죽음
알고 싶었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사람의 심정이 어땠을지, 아마 진단을 받기 오래전부터 심한 통증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 아침 난 친한 친구의 장인어른이 부음 소식을 들었다.
아침 07시 20분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고양이처럼 팔과 다리를 길게 펴고 기지개를 켰다. 하품을 하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여전히 눈꺼풀은 붙어있었다. 그렇게 7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었다. 미국에 사는 두일이가 이른 아침 톡을 보냈왔다. 톡을 열어보기도 전에 안 좋은 소식이란 걸 알았다. 이른 아침부터 미국에 사는 두일이가 톡을 보낼 리가 없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점심시간 전후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친한 친구의 장인어른이 방금 전 돌아가셨다. 두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장인어른의 입은 까맣게 벌려 있었다. 마지막 숨이 빠져나간 아버지 앞에서 딸과 아들은 울고 있었다. 8개월 차이를 두고 서로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하얀 벚꽃이 예쁘게 피어났던 4월에 장인어른은 돌아가셨다. 친구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같이 아침밥을 먹다가 울고야 말았다. 이슬 맺히듯 조용히 눈가에 물방울이 맺었다. 흔들리는 목소리 두 뺨으로 흐르는 차가운 눈물, 아직도 장인어른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계절처럼, 풍경처럼, 바람처럼, 어떤 건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다. 얼룩처럼, 파편처럼, 가끔은 새벽안개처럼, 누군가를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다.
죽음은 저녁처럼 조용히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저녁이 오듯이, 아침과 저녁 연결되어 있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는 닿아있다.
친구의 장인어른은 몇 해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친구의 장모님은 음식 솜씨가 좋다고 했다. 손이 크고 정도 많아 이웃을 초대하고 음식을 나누었다. 늘 주방에 있었고 늘 많은 음식을 준비했다. 늘 집으로 많은 이웃과 친구를 초대했고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특히 골프를 좋아해서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도 라운딩을 나갔다. 그렇게 한평생을 옆에서 남편과 한가정의 중심이 되어주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장인어른은 자신의 병을 애써 감춰갔다고 했다. 친구의 장인어른은 췌장암 말기, 극한의 통증이 몰려오고 나서야 응급실로 실려갔다. 피검사 수치와 몇 가지 진료 끝에 췌장암 말기 판단을 받았다. 그때까지 고관절이 안 좋은 걸로만 알고 있었다. 췌장암 말기, 이제 삶의 허락된 시간은 체 일이 주의 시간이었다. 친구의 장인어른은 그 이 주 동안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지인분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세상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도 있구나 생각을 했다. 비록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눈을 맞추며 인사 몇 마디는 나눌 수 있는 정도여서, 부족한 게 없었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어산 송장처럼 보였지만, 이제 곧 죽음이 오겠구나 보고만 있어도 알 수 있었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아름다운 이별,
그곳엔 슬픔이 없었다. 서럽게 우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음식을 나누었다.
죽음은 어느 날 조용히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