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거지요."
후지와라 신야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영업 기밀 누설
달고 맛있는 이야기 속으로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어 "
"농한기 때 박농사를 지었는데 참 고된 일이야 박이 너무 익으면 딱딱해져서 여들여들 할 때 따서 속을 긁어내야 돼 그걸 잘 말려야 팔 수 있는데 비 한번 맞히거나 습도가 맞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거든 "
"누애 치는 것도 많이 했지 "
"경상도땅은 넓고 사람도 띄엄띄엄 살아 시장도 멀고 팔 수가 없었어 땅도 자갈밭이라 논농사 외에는 뭘 심어도 영글지가 않았어 개중에 고추농사가 제일 돈이 되다 보니 고추만 심었거든 "
"사돈어른이 그 연세에도 고추농사를 짓는 걸 보면 재미도 있으신 게야 판매가 수월하고 땅도 기름지고 또 무엇보다 성실하신 거지"
아버지 고추농사 이야기를, 힘든 농사일을, 그 연세에도 놓지 않는다는 말끝에 장인어른에 살아온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장인어른의 살아온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달고 맛있었다. 삶의 부침은 아버님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놓았고 그 성실함에 하늘도 도움을 준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고향을 등지고 초등학교 막 졸업하려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형님 사시는 근처 안양으로 올라온 게 마흔 중반이었어"
"고향사람들이 붙잡고 말렸지 어서 가라고 한 사람은 없었어 그렇게 막막한 길을 떠난 거야"
"근데 목감에 와서 농사질 땅을 알아보고 다니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나서지 모야 "
"땅도 알아봐 주고 농사일도 도와주고, 박 씨라는 사람인데 키도 작고 다부진 사람이야 "
"어느 날은 그러더라고 "
"아무 작물이나 심으면 돈도 안되고 힘만 부쳐 여기서 돈 되는 작물은 토마토가 제일이야 그걸 심어봐 "
"박 씨가 들려준 말대로 난 토마토를 심었어 그냥 심을 수 없는 게 농사일이라 박 씨가 하나하나 일러주었어 땅거름 주는 법, 고랑 만드는 법 가지 치는 법 물 주는 법 수분하는 법 약 치는 법 한마디로 자기가 이태껏 시행착오로 배우고 익힌 토마토 농사일을 무료로 알려준 거야"
"같은 작물을 하면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소중한 것을 ᆢ한마디로 우리에겐 영업기밀 같은 거였지 남들에게 쉽게 안 가르쳐주는 노하우 중에 노하우도 성심껏 가르쳐 주었어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
듣고 있던 장모님도 말을 거드시며
"우리가 처음에 좋은 사람을 만났어 ""낯선 곳에서 박 씨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야"
"박 씨가 도움 많이 주었어 "
"박 씨가 일러준 데로 한 해 두 해 삼 년째 하다 보니 어느새 토마토가 박씨네 토마토처럼 주렁주렁 큼직 막하게 영굴더라고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었지 그다음 해부턴 거침이 없더라고 십 년 넘게 토마토 농사를 짓고 토마토 끝나면 영채도 심고 상추도 심고 삼모작을 했지 "
"경상도 땅에서 심는 것마다 실패만 했는데 고향 등지고 올라와서 마지막에 성공을 한셈이지 고향사람들이 놀라는 게 당연했어
서울 가서 출세했다고 좋아해 줬어"
"박 씨가 알려준 토마토작물 하나로 일어설 수가 있었던 거야 근 십 년 넘게 토마토를 했어 영채도 돈이 됐지 심는 것마다 다 잘됐어 시장이 가깝고 사람들이 많이 모 여사니까 판로는 많았으니까 "
야구로 치면 구 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쓰리볼 피해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아버님은 날아온 공을 힘차게 쳐버린 것이다. 그 한방이 장외 홈런이었다. 포기 없는 삶, 살아가야 하는 삶, 그렇게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삶, 꽃 향기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삶, 그 끝엔 대가 없는 도움을 주는 이웃이 있었다.
그 홈런 한방에는 박 씨 아저씨라는 훌륭한 코치가 있었다. 역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북쪽에서 귀인이 올 거라는 토정비결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박 씨 아저씨는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말해 줄 것이다.
삶 속에 숨어있는 영업 기밀을 아무 대가 없이 건네줄 것이다. 마치 선물처럼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