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게 뭐야 곰팡이 폈잖아 버려 이런 거 쓰면 안 좋아! 이것도 버리고!! 엄마! 여기 잘 닦아야 돼 금방 곰팡이 슬어 "
말복이다 이른 아침 어머님의 전화가 걸려온 건 막 잠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어머님 전화를 받고 생각해 보니 지난주 안부 인사드리면서 말복 때 찾아뵙겠다 나눈 말이 생각났다 꼼꼼하신 아버님이 기억나셨던지 전화 넣어 보라고 하셨더랬다
" 오빠! 오빠가 말복 때 간다고 했어!!
"갔다 오지 모 ᆢ 말복 때라도 찾아뵙겠다고는 했거든 "
목감 근처 자주 가는 만두집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쩍였다 한낱 만두 먹겠다고 저 넓은 주차장이 차 댈 때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걸 보면 역시 음식 장사는 맛 이어야 한다는 걸 ᆢ 그 집을 드나들 때마다 느끼게 된다 포장 해가는 만두는 백화점에나 있을법한 자동 주문기계를 통해 주문해야 된다니 이 정도면 만두집 주인의 장사 수완도 칭찬받을만했다 곁들어 드실 오리구이까지 사들고 아버님 집으로 들어섰다 맏딸이 늦은 나이에 힘들게 얻은 쌍둥이를 아버님 어머님은 살뜰히 돌봐주시고 키워 주셨다. 당신들의 아이와 그 아이가 낳은 아이들을 어린이집 들어가기 전까지 드나들며 돌봐주셨다. 아버님 어머님이 두 아이를 시간 나는 데로 봐주셨던 터라 현정이는 곁을 줄 마음의 공간이 생긴 듯했다. 누구나 그렇틋 갓난아이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뒤에라야 진정한 관계 맺기가 가능했다. 부모의 모성은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되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맏딸이 아이를 키워 나갈 수 있는 간격과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다. 부모님의 사랑이 그걸 가능하게 해 주었다.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회사일로 바빴던 나는 근 일 년을 잦은 출장에 매달려 있었다. 토마토 농사를 크게 지으셨던 지라 당신들이 더 힘드셨을 터인데도 내리사랑은 그 힘듦을 잊게 했었으리라 두 분들의 아낌없이 나눠 주시는 사랑 덕분에 지금도 아이들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곁을 더 찾았고 수더분해했다 식사를 마쳐 갈 때쯤 ᆢ 특별한 일도 아니었지만 긴 장마로 인해 주방 한쪽 켠 나무 주건에 흰 곰팡이가 큼직 막하게 피고 있었던 것을 현정이가 보게 되었다 평소 곰팡이에 대한 끔찍한 알레르기성 반응을 가지고 있던 터라 어머님 집에 올 때면 더 수선을 떨었던 터였다
" 엄마!!! 이거 나 결혼하기 전에도 쓰던 거잖아 몇십 년은 썼겠네 이 정도면 버려요 곰팡이 덕에 버린 셈 치고 이것도 버리고 ᆢ 그리고 저것도 버리고 좀 버려요 멀쩡한 거 놔두고 왜 이런 걸 써 "
혹시나 어머님이 버리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던지 말 던지기 무섭게 나무로 된 수저 주걱을 싸잡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아버님이 옥수수 한 알 한 알 뜯으시면서 지키는 말속으로 들어오셨다
" 이상하게 우리는 버리는 게 잘 안 되더라고!! 잘 안돼!!
오래된 냉장고 선풍기도 손이 타서 그런가 내다 놓기가 쉽지 않아 아파트 이사 오고 나갈 때 내다 벌이는 침대며 가전제품들 볼 때마다 말짱 한걸 버리는 걸 보고!!! 저러다 사람도 갔다 버리지 않나 싶더라고!!! 너네들 학생 때 입던 옷들이나 결혼 전 사입은 양복들도 저 농구석에 있는데도 그것도 버리기 쉽지 않더라니까!!! 내 몸에서 뭔가가 나가는 것 같아 마음먹고 정리해도 어렵더라고"
"아빠!! 아빠네는 몇 년 전에 이사 오실 때 짐을 싹 줄이고 오래된 것들 정리하고 오셔서 거실도 그렇고 행간이 없는 거야 다른 집에 비하면 ᆢ"
" 그건 그렇지 인천 사시는 너희 이모네만 가봐도 화분만 해도 거실 베란다 한가득이라 사람 사는 집인지!! 우리 집엔 거추장스러운 짐이 하나도 없으니까 화분도 없고!! 아주 단출해!!"
아니 그럴까!! 버리지 못하는 모든 것이!!
숟가락 젓가락 그릇 살림 잡기들 어디 정 안 간 데가 있을까!!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오랜 시간 두 분과 같이 늙어 가고 있는,, 나무 옥철이 세월의 인두껍만큼이나 진하게 배어 버린 장롱과,, 그 장롱 안에 켠켠히 걸려 있는 두 분의 옷걸이들과,, 자식들이 때마다 사다 드린 좋은 옷도 있으련만 ,, 색 바래고 나프탈렌 냄새 듬뿍 밴 철 지난 양복에서부터 옷핏이 나름 좋다며 버리지 못하는 사연 많은 옷들이 행간 행간마다 포개여 있다
20년 넘은 나무 주걱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게 마음 쓰실 만한 것도, 눈 여겨 볼만한 것도 아니련만!!
두 분에게는 곰팡이 꽃이 듬뿍 편 나무 주걱과 함께 한 시간이, 기억이 배어 있으실 것이다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누구에게는 쉬워 보이는 너무 하찮은 일이련만,,,,
쉬히 버리지 못하는 그 정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게 우리의 밥을 퍼주고... 목구멍으로 밥을 져 날라주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란 걸 아버님 집을 나오면서 알게 되었다 순간 군입대 했을 때 제일 먼저 포크 달린 숟가락을 나눠주며 무섭게 이야기하던 조교가 생각났다
" 숟가락이다. 이것 잃어버리면 너흰 죽는다"
총다음으로 소중 했던 건 그 숟가락이었다
논산훈련소 6주 내내 훈련병들은 그 포크 달린 숟가락 하나에 의지해 목숨줄을 연명해 나갈 수 있었다
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의 소중함 이여!!
곰팡이가 활짝 핀 나무 주걱은 씻기고 말려져서 다시 어머니 수저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마도 몇 주 아니 몇 달은 현정이에 눈에 띄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신을 보내 놨을 것이다 나무주걱은 어머니의 순장조가 될 운명인 듯했다
어머님은 사위만 볼 수 있는 웃음을 지으셨다
웃으시는 어머님이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