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 그 맛깔스러움에 대하여

오이지 이야기

by 둥이


여름이면 먹을 수 있는 오이지는 단순한 반찬이다.


초복으로 더위가 한창 기운이 넘쳐 오를 때 먹기 시작하는 오이지는 더위를 나게 해주는 별미 중에 별미다.


오이지는 아무 맛도 나지 않은 물과 소금으로 절여진 투박한 반찬이다. 오이지를 통으로 얇게 썰어서 양념 없이 물을 부어 주면 완성되는 어찌 보면 꽤나 성의 없는 여름 반찬이다. 더운 여름에만 찾게 되는 반찬, 그렇다고 보양식도 아니련만 끼니 식사를 맛나게 더해주는 제철 음식이다. 삼복더위에 찬물로 들이키는 오이지 한 사발은 청량하기까지 하다.


혀에 스며드는 강한 짠내음과 어금니 사이로 으깨지는 아삭아삭 살아있는 식감과 탱탱했던 섬유질이 헐거워질 때라야 돋아나는 소금물에 젖어지고 걸러져서 만들어진 절대 내공을 가진 맛의 깊이, 오이가 소금을 먹어야만, 그 소금기로 전신을 파해치지 않고 그렇다고 소금을 내치지도 않고 담그는 자의 소리를 듣고서 익어가는 맛의 경쾌함, 제 몸이 가진 것을 내어 주고 짠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낼 수 있는 아삭함의 대가, 절여진 음식이 향기를 토해 낼 때, 그때 먹어야 맛있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여름 반찬, 소리가 살아 있어 소리를 먹는 음식, 소금이 말라가며 제 색깔로 노랗게 반짝 거리며 빛을 보게 되는 음식, 소금에 젖어 있는 소박하고 가난한 농부들의 음식이다. 오이의 풋내가 젖은 향기로 터져 나는 음식, 소금물에 열흘을 그리 긴 조리시간으로 푹 담가야만 향기를 토해내는 음식, 접해보면 어느 순간 순하면서 강하고 친숙하고 반가운 음식으로 변해있는 그런 음식, 단순하지만 맛의 깊이와 넓이를 품고 있는 음식, 소금이 밀어낸 재료의 자리에 재료의 물이 떠나지 못하고 남아 맛의 풍미를 완성해 주는 맑은 음식, 누군가의 씹는 소리에 없어진 입맛이 살아 돌아오게 맛드는 음식, 감촉으로 바스락 거리며 달팽이관으로 터벅대며 걸어오는 제철 음식이다.


그 짠 게 뭐 몸에 좋다고 그리 들이키나, 타박해도 한 사발 비워야만 성이 차는 절인 음식, 레스토랑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그런 음식, 그냥 집 반찬으로만 좋을 음식, 장소를 가리는 낯가리는 수줍음 잘 타는 그런 음식, 해마다 잊지 않고 찾게 되는 오이지에 매력은 한이 없다.


오이지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소금물에 노랗게 절여져 아삭하게 씹히는 오이지를 먹을 때ᆢ,


차돌멩이로 눌러 놓은 항아리 속 오이지가 소금 내음을 풍기며 익어갈 때, 이맘때쯤 ᆢ더위가 찾아오려고 할 때쯤ᆢ 반나절 무서운 속도로 커져있는 까실한 오이를 오이지 담그기 위해 똑똑 따고 있을 때


햇볕이 들지 않은 뒤란 응달 아래 모셔둔 항아리에서 알맞게 익은 오이지를 꺼낼 때 하얗게 묻어난 소금 끼를 찬물에 벗겨내 도마 위 단정하게 올라 있는 오이지를 바라볼 때 셰프라도 이랬을까! 오이지를 대하는 지극한 정성을 바라볼 때 ᆢ같은 크기로 ᆢ같은 두께로 사각사각 오이지를 자르고 있을 때,


냉장고 한편 묵직한 무게로 자리 잡고 있는, 잘게 썰어놓은 오이지 통을 바라보며 며칠은 찬 걱정 없이 밥 먹을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을 때,


잘 절여진 오이의 풍미를 만끽하며 오이지를 먹게 될 때,


추운 겨울 들이키는 동치미와는 비슷하면서도 격이 다른, 그 모라 그럴까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오이지, 재료의 온전함과 재료가 만들어내는 전혀 다른 풍미를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오이지, 재료의 온전함과 재료의 숙성미가 만나 폭발하는 맛의 오케스트라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에서 뭉개지며 전두엽에 전달되는 식감이란,


씹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뇌를 자극하여 안정을 만들어 주는 식감 좋은 오이지.


아삭아삭아삭 귀속으로 스며드는 ASMR 자율감각 신경 반응,


잘 익은 오이지를 씹을 때와 절이지 않는 오이를 씹을 때의 질감 차이,


어금니 사이에서의 아삭 쪼개지는 식감에서 오는 쾌감,


소금물의 짠내음이 물기 많은 오이 속으로 밀고 들어가 오이가 가진 물을 다는 밀어내지 못하고 오이가 지닌 본연의 물과 오이 섬유질이 물리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낼 때, 삼투압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맛의 기밀은 놀랍다.


여름철 별미로 오이지 만하게 있을까!


오이지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음식이다. 나 역시 여름이면 오이지 하나로 밥 한 끼를 뚝딱 먹을 정도로 오이지를 좋아한다. 아버지의 오이지 사랑은 찬으로 드시는 양으로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다. 그 맹맹하고 알 수 없는 맛이 왜 철마다 당기는지에 대해서 우리 가족은 모일 때마다 이야기하곤 하지만 딱히 그 내력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맛! 톡 쏘는 맛도, 감칠맛도 없는 묘한 맛


이런저런 양념도 이런저런 재료도 들어가지 않은


재료 그대로의 천둥벌거숭이 맛!


요리로도 반찬으로도 음식으로도 제대로 된 찬으로써도 대접을 받지 못했을 그런


며느리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던, 찾는 사람만 찾는다는 그냥 집 반찬


왜 오이지를 저렇게 좋아할까 그렇게 맛있어


먹는 내내 물어보는 아이들


아버지가 좋아하셨기에 엄마는 더위가 몰려올 때쯤이면 서둘러 갓 수확한 길쭉길쭉한 오이와 늙어서 빛이 노랗게 된 오이를 골라내고 싱싱한 오이들로만 추려서 오이지를 담그셨다. 비법이라고 할 것도 없는 오이지 비법은 살펴보면 아무것도 없었기에 온 식구들이 철마다 때가 되면 오이지 사발을 국사발 들듯이 떠먹는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언제는 이런 맛을 내는데 소금이 비법이 아닐까 하여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 엄마, 천일염이나 어디 특별한 데서 주문해서 소금을 사용하는 거예요? "


" 아녀 그냥 소금이여 짠맛 나는 소금이면 되지 뭐 천일염 이면 더 맛나긴 하겠다 마는 오이지 담근다고 그 비싼 소금을 쓴다는 게 낭비지 "


그래 무슨 비법이 있겠지 이렇게 들이켜고 또 들이키고 이런 중독성을 지닌, 계속 먹게 되는 데는 뭔가가 있을 거야 하며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이게 뭔가 했다.


"소금을 반시간 정도 끓여서 식힌 후에 오이를 담가 푹 담그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지 "


"푸~~ 욱 담그라고요 " "그것 밖에 없나요 비법이 "


"그래 소금물이고 그 위에 담그는 게 오이니까 둥둥 뜨거든!


"그냥 물에도 떠있는 애들을 소금물에 담그려니 푹~욱 눌러 줘야 된다. “


"잘생긴 찰돌멩이, 무게가 좀 나가는 걸로 두어 개 세게 정도로 눌러주면 소금물에 잘 담가 지거든!”


"그위를 볏짚으로 두둑이 막아주면 된다 열흘정도 한 보름정도 담가 두면 노랗게 익어가거든 그때가 제일 맛있을 때지! “


동네 할머니들이 오이지 철만 되면 동글동글하고 잘생긴 차돌멩이들을 선물로 가져다주시는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풍경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해 여름내 익어갈 오이지를 눌러줘야 되는 돌멩이만 보이셨나 보다.


그 무거운 돌멩이를 지고서 초복이 오기 전, 오이지를 담글 때쯤이면 서로에게 인사차 들르시며 돌멩이를 건네시는 동네 할머니들, 그 후한 인심이 오이지의 비법이 아니었을까! 오이지가 괜히 맛있는 게 아니었다. 오이지는 인심 좋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돌멩이 덕에 익어갈 수 있었다.


무언가에 푹 담겨야만 제 맛을 찾을 수 있었다.


고추장도 된장도 그 안에 박아둔 무며 오이며 고추까지도 ~


온전히 담겨 있지 않으면 그 맛을 품을 수 없었다.


그 맛을 담가 낼 수도 품을 수도 흉내 낼 수도 없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오이지처럼


짧은 한철 지나가는 우리도 푸~욱 담귀자


온전히 담그울 때래야 만 그 맛이 익어 갈 수가 있다.


무엇에 담길지는 깊이 생각해 볼진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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