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잃어 버렸을때 드는 생각
나는 몇해 전에 핸드폰을 잃어 버린적이 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대부분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앞 공중전화는 전화를 걸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시끄러웠다. 그래서인지 왠만한 전화번호는 거의 외우고 다녔다. 그건 어찌보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외어지는 구구단과 같았다. 친한 친구집과 친척집 전화번호 까지 수많은 번호를 줄줄히 꽤 차고 필요할때 마다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번호를 천자문 읍조리듯 숫자 하나 안틀리고 외운걸 보면 우리의 뇌는 궁하면 어떻하든 방법을 찾아낸다.
어떻게든 에너지 소진을 줄이려는 게으른 뇌의 본성이 핸드폰의 보급에 힘입어 그나마 외우고 있던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마저도 잃어 버리게 만든다.
집전화 번호도, 아내의 전화번호도 생각이 나지 않을때가 많다. 뇌는 이마저도 외우려 들지 않는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나는 친구집에 전화를 걸었다. 친구집은 원주에도 있었고 서울에도 있었고 광주에도 있었다. 지역번호와 전화번호도 다들 틀려서 걸다보면 다른집으로 거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몇해전에 핸드폰을 분실 한적이 있다.
처음 겪어본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핸드폰이 내 수중에 없다는걸 알고 난후 드는 첫 느낌은 이랬다.
'아닐꺼야 어디에 있겠지' 강한 현실 부정이 동반됐다. 두번째로 드는 감정은 핸드폰을 잃어 버린걸 인정할수 밖에 없는 절망감 이였다. 대강의 느낌은 암선고를 진단받은 환자들이 겪을 심리불안 순서와 비슷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번호가 없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 뇌는 멘탈붕괴에 이른다. 아무것도 할수 없고 어떻게 해볼수도 없다.
핸드폰이 없다는걸 안건 대리 기사가 나를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준 직후 였다. 당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빗대어야 하나!
애인과 이별했을때 아픔에 견주어야 하나! 세상이 무너진듯한 그냥 그 느낌은 무력감과 절망감에 가깝다. 어찌 할수 없는 그런 ᆢ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건 어제 대리운전을 불렀던 장소로 찾아가는 거였다. 관리사무실에 찾아가 보기도 하고 CCTV를 보여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민법상 CCTV 연람은 경찰관 입회아래 가능하다고 해서 평생 해보지 않은 경찰서에 민원신고 까지 하고 나서야 두명의 경찰관이 쏜살같이 달려 왔었다. 경찰관 두명은 어찌나 정중하게 시민보호 의무를 준수하는지 그 친절함에 감동까지 받았다.
"CCTV를 돌려 봤는데요 어제 선생님이 차에 타실때도 손에 핸드폰은 안들고 계셨어요 그전에 분실 하신듯 하네요"
많이 취한 나를 차까지 바래다준 친구의 말과는 정반대의 말을 해서 당황 스러웠다.
핸드폰을 잃어 버리는 그 순간 뇌는 살아남기 위해 사용하지 않던 뇌근육을 활성화 시키는듯 했다. 뇌신경세포인 뉴런들의 충돌이 들리는듯 했다.
더 빠릿해지고 더 체계적이고 뭐든 받아 적으려고 하고 뭐든 기억하려 했다. 핸드폰이 없는 짧은 하루동안 뇌의 변화는 놀라우리 만치 진화하고 있었다.
뇌는 게으르고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신체 장기 이다. 이 뇌가 살아가는 방법엔 나름의 진화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그 안에는 최소한의 힘으로 살아남는 방법이 각인돼 있다. 인간의 생존 진화의 역설도 어쩌면 저 컴컴힌 동굴안에 갇혀 있는 호두 표피 처럼 생긴 뇌의 본성 일것이다.
오후 늦게 핸드폰을 다시 개통하였다. 하루가 채 안되는 시간동안 나에게 핸드폰이 없었다.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없어 진듯한 느낌이였다. 나와 남을 연결해주는, 세상과 접속하는 네트워크 ᆢ
때론 뇌의 활성화를 위해 또다른 진화와 생존을 위해 핸드폰 자체를 분실하는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모든 신용업무 은행업무 리스크도 동반되지만 자의로 분실 되는 방법은 핸드폰모드를 OFF 시키면 간단하다.
그래 가끔 핸드폰을 잃어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