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이야
지인들에 소개로 찾아간 식당은 한적했다 분잡 한 시간대를 피한 덕도 있을 터였다 고은 주름살로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가 사람 좋아 뵈는 미소로 반겨 주신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길도 아니어서 어지간히 맛있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시기인 탓도 있어서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전국 어디를 가도 같은 맛 같은 모양 같은 공간으로 무장한 한국의 체인점 식문화는 집밥이 가지는 소박함과 제철 음식의 감칠 미, 무언가 배불리 먹고 나도 괜스레 허전한 그 어떤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다
뭐 배만 부르면 됐지 하고 생각들 수도 있고 한 끼 때운다라고 바쁜 핑계될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달라질 수도 있다
단출한 메뉴판에 눈이 갔다 기껏해야 대여섯 까지 메뉴에 주방을 지키시는 할머니 ᆢ도무지 고수에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시 나갈까 발걸음을 되돌려 보려 짐짓 어색한 몸동작을 눈치채셨는지 ᆢ
앉으셔요!!
할머니의 앉으세요 말이 등살을 밀쳤다 덥석 주저앉아서 성의 없이 김치수제비를 주문했다
그때 한 할머니 두 분이 들어오셨다 자주 왕래가 있으신듯한 두 분의 할머니와 식당 할머니는 주고니 받고니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아이고 죽다 살았어 힘들어
MRI 찍고 의사 만나고 약 타 가지고 왔어 "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모라도 끼니 잊지 말고 챙겨드세요 "
따르릉
할머니의 핸드폰 소리가 소음을 가른다
"딸냄이네
지 엄마 되질 까봐 껌뻑하면 전화질이여
드려다 보긴 싫은가 비어 뻔질 전화야"
독백처럼 내 맺으며 전화를 받으신다
"그래 나요 ~ 그려 그래
점심!! 여기 면사랑 집이여 여기서 먹으면 돼!! 그려 "
사람 냄새 물씬 풍기시는 할머니의 당찬 입심에 혈액순환이 빨라진다 듣고 있노라니 서로에게 기대선 할머니들이 애잔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나 쫌만 줘 "
"빙원 다녀왔으니까 미역국에 밥 말아 드릴게 천천히 드셔 아침에 미역국 끓여 놨어"
일치감치 드나드는 분들을 위해 미리 끊여 놓으신 듯하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할머니가 불쑥
" 그딴 거 왜 끓여 아떼 ,, 나 먹으라고 끊인 거 아니지"
"그럼 ᆢ나 먹으려고 끊였어 어서 집에 가서 드셔"
"나 싸갈게 싸줘
집에 가서 천천히 먹을게 "
까만 봉지에 둘둘 말아 미역국을 건네신다
세분의 할머니는 서로의 흰머리와 불편한 두 다리와 꼿꼿치 못한 허리를 서로에게 기대어 서서 ᆢ서로를 토닥이며 힘내라 쓰담쓰담 쓰다듬으신다
허리에 둘러메신 가방에서 작은 손지갑을 꺼내시고는 한 끼 식사분의 동전을 세고 계신다 많지도 않은 한 끼 식사비로 500원짜리 동전 한 움큼을 건네신다
"이것 받아야 네가 밥 편히 먹으니까 받야 "
"아니야 파는 거 아니야 미역국인데 그냥 가져가란께 "
"나 그람 못 와 "
오랜 실랑이가 좋아 보인다 서로를 보듬는 노인들의 손등이 그들에겐 밥보다 더한 약일께다
조금 후에 김치 수제비가 나왔다
조그만 쟁반에 수제비 한 그릇 김치 한 그릇 오이짠지 한 그릇 소박한 밥상이다
집밥처럼 단출한 정성이 꽁꽁 숨어있는 내공이 묻어 있는 밥상이다 먹어보지 않고도 전신으로 퍼져가는 김치수제비의 향기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다
할머니들의 대화를 밥먹듯이 챙긴 덕일까 호르몬 과다 분비 인 듯도 하다
침샘이 돋았다
두피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간다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목덜미를 훔쳤다
잊었던 그 맛있었다
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행복한 그 맛이었다 그날 이후 난 사람들이 붐빌만한 시간을 피해서 그 식당을 찾고는 한다 그 따마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시는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치 수제비 맛만큼이나 맛있는 그분들의 온기가 나를 찾아가게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