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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쓰는 편지

사랑 편지

by 둥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정작 써내려 가려니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어떻게 써야 되는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ᆢᆢ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삼일이 지나가고 있어요. 하고 싶은 말들은 글로 엮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네요


며칠 전 당신은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난 후 펑펑 소리 내어 울었지요. 세찬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은 당신을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렸어요. 당신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흔들리는 어깨가 말해 주었어요. 올바른 생활 습관과 예절 바른 아이로 키워 내려는 부모의 바람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란 걸 키워가며 알아가게 되었어요. 언제부터인지 작은 일에 화를 내며 소리 지르고 있는, 훈육보다는 자기감정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몹쓸 어른이 되어 버린 자기가 싫어서 울었다고 이야기했었죠. 우린 그럴 수 있어요. 그렇게 아파할 수 있어요. 아마 우리는 그렇게 부모가 되어가는 듯해요. 우리 부모님도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을 테니깐요. 부모의 사랑이 다를 순 있어도 본질은 다르지 않을 거예요.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당신은 이미 너무 훌륭히, 아이들에게 필요한, 충분히 넉넉한, 넘치는, 햇빛과도 같은 사랑을 주고 있어요. 부족하지 않을 사랑을 아이들은 받고 있어요. 때론 먹구름이 질 때도 있고, 그래서 비도 오고 천둥 번개도 치지만 하늘은 파란 하늘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런 하늘은 한결같은 햇빛을 뿜어내고 있어요. 당신은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그런 파란 하늘과도 같아요.


당신은 이제 마흔아홉 살이 되었어요. 곧 쉰 살이 되겠지요. 그 나이 때에 잦아드는 갱년기 증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감정변화에 힘들어하는 당신을 보며 가슴이 아파 왔어요. 이십 오 년 전 따뜻한 오월에 당신과 처음 만났었죠.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오월의 꽃처럼 당신에게는 꽃향기가 만발했어요. 당신 주변에는 언제가 사람들이 많았어요. 당신에게는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당신만의 색깔이 있었어요.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해 보였고 당신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었지요. 밝게 웃는 당신의 미소가 사람들을 편안하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지금 마흔아홉 살의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워요. 함께 살아온 지 스무 해가 되었지만 살아 갈수록, 당신과 함께 할수록 나는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어요. 언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시간의 더깨가 쌓여갈수록 당신의 눈주름이 늘어날수록 옷깃 속에 숨겨진 나이테가 더해질수록 그렇게 곱게 늙어갈수록 "당신이 더 좋아진다"라고..

마흔아홉 살의 당신을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힘들어하는 당신 곁에서 힘듦을 덜어주지 못함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어요. 당신이 겪고 있는 슬픔을 메어 줄 수 없다는 것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하네요.


당신은 내게 삶의 풍부함을 알게 해 주었고 나는 당신을 통해 삶을 사랑했지요. 살아가며 당신은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당신만의 흔들림 없는 의연함을 보여주었지요. 나에게는 당신의 의연함이 삶에 지표가 되었어요.

사소하고 작은 문제에서부터 촌각을 다투는 큰 문제에 까지 당신의 여유와 차분함은 급하고 서툴기만 한 나의 맨홀 뚜껑보다 큰 빈틈을 메워 주었어요.


마흔 살 늦은 나이에 힘들게 산부인과 병원을 다니면서도 당신은 힘들다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렵게 쌍둥이 임신이 확인되던 날 오히려 당신은 덤덤히 받아들였었죠. 넘치는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는 당신의 세심함 속에는 유산의 기억이 남아 있었지요. 새벽녘 갑자기 쏟아진 하혈 때문에 병원으로 가는 길이 힘들었을 텐데도 당신은 괜찮을 거라 스스로 다독였었죠. 담당 의사 이야기를 듣고서야 방긋 웃으며 눈물을 흘리던 당신 마음속에는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사랑이 녹아 있었어요.


당신에게는 늘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조바심 내는 나를 달래주었어요. 그 무엇보다 당신에게는 주어지는 행복의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어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오늘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 스며 있는 뭉클함과 애잔함 동료애 슬픔 기쁨 온갖 감정을 알아가는 게, 그 모든 게 사랑 이겠죠


아이들이 어느새 초등학교 삼 학년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커나갈수록 우리들의 잔소리도 많아졌어요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이들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잘 해낼 거예요.


내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당신은 그때도 쫓아다니는 저를 싫다고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는 당신을 찾아갈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못다 한 사랑, 못다 한 말이 있어서는 아닐 거예요. 어딘지 모를 곳에서 다시 태어나 홀연히 길을 걷다가도 당신의 그림자와 당신의 향기와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의 눈빛과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때도 저를 싫다 할 테지만요 사 년간을 쫓아다녀야 만나주더라도 어쩔 수 없겠지요

내겐 그게 사랑 이니깐요.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보다 작아서 다행이에요. 내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언제나 당신 곁에서 젖은 낙엽 처렁 당신한테 꼭 붙어 있을게요


당신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어요. 당신과 있으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당신과 함께 걷는 산책길이 좋았어요 함께 걸으며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좋았어요. 주완 지완이의 성장이야기며 그날 읽은 책이야기며 주식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며 건강이야기, 당신과 나누는 이야기는 나를 즐겁게 만들어요.


당신은 나의 아내이자 친구예요.. 당신을 만나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내게 있어 삶의 본질은 당신과 함께하는 삶이에요ᆢ당신을 사랑하는 것 당신의 시간과 함께 하는 것 이에요.


당신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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