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이유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 나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현대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는지 모르는 상황을 경험한다. 아무리 잡으려해도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왜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상실하고 있으며, 왜 나는 왜 진짜 나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첫째, 현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빨리 지나간다. 기계와 과학 기술의 빠른 협업 작용에 나는 그 매뉴얼을 쉼없이 따라가야 한다. 또한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불확실한 사회를 견뎌내는 일이 벅차기만 하다. 그 일을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공부를 하면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있을 곳을 찾느라 쉼없이 움직여야만 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잠시 잠깐 한눈을 팔아버리면 나의 길은 저멀리 떠나가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앉아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집중을 하는 시간만큼 세상은 변화하고 시간은 빨리 지나가며 나는 내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 즉,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하루 하루 속에서 적응하고 스스로를 응원하며 따라가다 보면 내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도 많지 않다. 내가 사고하고 행동한 것들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나아가고 싶은데, 깊이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현대는 이렇게 빠르게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잡을 시간없이 그냥 상실하고 있으며,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뒤로 사라진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도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즉, 우리는 스스로 고민해서 정한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화려한 길을 갈망하고 그것을 동경하며 나아가고 있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길을 따라간다. 그것이 어쩌면 쉽고 간단한 길일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고군분투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제맛이 아니겠는가? 또 책 한권이 생각난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애벌레가 등장하는데, 애벌레가 어느 날 더 넓은 세계를 보기 위해 나무를 벗어나서 멋진 모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많은 애벌레들이 하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애벌레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채 맹목적으로 길을 따라 올라갔다. 하지만 그 모든 애벌레들을 따라간 끝의 그 기둥의 위는 경쟁과 힘겨움만이 자리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채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했던 애벌레들은 후회했지만 그 기둥에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애벌레는 그곳에서 내려와 늙은 나비를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결국 나비가 되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 맹목적이었던 시간을 벗어나 자신이 되고자 하였다. 자신을 벗어나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한 끊임없이 아름다운 노력이었다.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른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명의 꽃이 피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나 스스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깊이 이해하고 직면해야한다. 나도 한 때는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지 않겠냐고 질문한다면 나도 명확히 no라는 대답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따라가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 안정감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서 극복을 했을 때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리 저리 충돌하면서 피워낸 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나는 애벌레처럼 나 스스로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고유한 내가 빛나고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선택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길을 따라간다면, 우리가 진심으로 선택한 그 길을 따라간다면, 고군분투 하면서도 실패하면서, 성공하면서 얻는 기쁨과 성취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진정성 있는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셋째,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모습은 사회 속에서 항상 꾸며져 있다.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이는 사회 속의 나의 모습이다. 타인이 볼까봐서 또는 타인 앞에서 잘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꾸민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고 또한 조금은 꾸미는 것도 예의와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모습이 과도하게 된다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고, 우리의 본 모습을 강화하고 본질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자유로운 표현은 거의 상상할 수가 없다. 감정은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마음 속의 이야기들에 귀기울이다 보면 눈물흘릴 일도 많고, 회피하고 싶은 일들도 강하게 직면해야 하는 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시작이 나를 알아가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감정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고찰하고 반성하며,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이해하는데서 나타나는데, 지속적으로 타인 앞에서 꾸미는 모습을 고수한다면 진짜 나와는 다른데서 오는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나를 알아가는 길은 나에게 먼저 살며시 말을 걸음으로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하면서 대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대화는 나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고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다. 이러한 의미있는 배움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우리를 상실한다. 하지만 나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또한 어느 순간에 멈춰있는 일도 아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사회를 살아나가면서, 다른 사람의 언제까지 욕망을 따라가면서, 진정 원하는 것을 꾸며간다면 그 길에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상실하고 있다는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은 끝까지 나의 의지를 단호하게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들리는 우리 스스로를 굳건하게 믿어주는 것이다. 나의 모습이 흔들릴지라도 언제나 나만큼은 나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 믿음은 분명 길을 밝혀줄 것이다.
참고문헌
트라나 폴라스(2017). 꽃들에게 희망을.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