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부조리를 감당할 수 있는가?
나의 현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들이
나의 기대와 예측대로 들어맞는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분명히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
반드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던 상황.
하지만 보기 좋게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 순간은
살면서 자주 맞이하게 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그 앞에서 우린 어떤 마음의 형상을 그리게 될까?
결과를 맞이하고 나서 드는 마음의 변화는
아마 대부분 크게 팽창하고 꿈틀거리기 일쑤이다.
분노, 억울함, 서운함, 두려움, 공포와 실망.
닮은 듯 다른 이 여러 감정이 무작위적인 비율로 뒤섞여서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블랙홀처럼 나의 온 정신을 빨아들이지 않는가?
특히나 나의 열과 성을 다한 여정이었다면 어떠할까?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의지를 불태웠던 그 과정의 고단함이
크면 클수록 블랙홀 역시도 마찬가지 형태를 나타낼 것이다.
그렇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눈빛에는 화기와 냉기가 서린다.
이때 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연하기 그지없음을 느끼게 된다.
그간 걸어온 나의 인생길도 그러했던 것 같다.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 앞에서 온몸으로 떨어야 했던 시간들이
정말 길기도 했거니와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앞에서 무력감만 확인했을 뿐.
저항감을 드높여 세운다고 하면 오히려 부러지고 찢겼다.
하지만 순간의 판단은 그러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무언가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 것이 있었다.
나의 주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블랙홀을 품어봤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연배가 많은 분들 중 일부는 그 블랙홀이 지나간 자리에
비워진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허무감과는 다른 결의 빈 공간이었다.
오히려 순응하고 받아들임.
모순과 부조리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공간에 하나 둘 무언가를 채우고 있었다.
그간 돌아보지 못한 마음의 본질 같은 것.
야망이 지나간 자리는 비록 초라하고 피폐했지만,
그 빈 구멍 너머에 나의 본연의 모습이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나의 지금 순간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
누군가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이에 대한 동정과 깊은 공감.
그리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깨달음으로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음을 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사건들의 본질은 모순을 내포한다.
음과 양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기쁨과 슬픔은 빈번하게 교차된다.
짙은 암흑의 시대에 빛의 씨앗이 싹트고
영광의 순간 뒤편에는 조용한 내려감의 계단이 생겨난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의 반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때 가능해진다.
삶과 죽음도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의 의지대로 정할 수 없었고,
기쁘지만 고단함을 내포하거나 두렵지만 평안함의 모순을 내포한다.
때론 현실에 낙담하고 포기하면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제야 삶을 바로 볼 수 있다.
빛나는 면 뒤에 도사리고 있었던 어두운 단면을 말이다.
그리고 비로소 순응과 받아들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거기에서부터 본질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부터 우린 새로운 국면을 향해 걷는다.
나만을 위한 길이 아닌, 함께 걷는 방법을 생각한다.
드러냄이 아닌 섬김의 자리를 마음에 떠올리게 된다.
삶은 그토록 고단하지만 그 끝에 남는 깨달음은
아주 오랫동안 마음의 여운으로 남아 삶을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