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플러

악몽의 해석

by 허아른


최근 들어 진우는 무서운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꿈, 낯선 여자에게 쫓기는 꿈이다.


여자의 얼굴은 헝클어진 긴 머리에 가려져 있어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표정만은 생생히 느껴졌다. 부릅뜬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핏발 가득했고, 커다랗게 벌린 입 안에 돋아난 이빨은 침을 늘어뜨리며 번득이고 있었다. 이빨에서 늘어진 침이 턱을 타고 떨어져, 목에 두른 빨간 머플러를 검게 적시고 있었다.


여자는 양손을 쭉 뻗어 진우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쫓아왔고, 진우는 완전히 겁에 질린 채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다가 간신히 여자를 떨쳐내고 나면, 어느새 하늘 가득히 펼쳐진 삐뚤빼뚤한 그물이 진우를 덮친다. 그러면 덫에 걸린 짐승처럼 발버둥 치다가, 잠에서 깨고는 한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나쁜 꿈을 꿨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록 그런 꿈이 계속되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병원에도 가 보고, 상담도 받아봤지만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오히려, 꿈은 더 선명해지기만 했다. 꿈을 꾸고 있지 않을 때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여자의 튀어나올 듯 부푼 눈, 갈고리처럼 뻗어오는 손, 그물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반대로 주름 하나 없는 붉은 머플러가.


그렇게 시달리던 중에,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불쑥 말을 던졌다.


“태몽 같은 거 아니야?”

“뭐? 자기 임신했어?”


뜬금없는 아내의 말에 놀라 반문하자, 아내는 쓴웃음을 짓더니 바로 반박했다.


“그게 아니라, 뭐 그런 거 있잖아.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거나, 좋은 꿈이니 나쁜 꿈이니 하는 그런 거. 뭐라 그러지 그런 걸? 예지몽이라 그러나?”


예지몽과는 좀 다르지 않나 싶기는 했지만, 진우는 구태여 반박하지 않았다.


“낯선 여자가 쫓아오는 꿈... 그리고 그물에 걸린다고 했지?”


아내는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으로 뭔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낯선 여자가 쫓아오는 꿈...은, 여기 있다.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야!”


아내는 짐짓 화를 내는 척 장난스럽게 진우를 쳐다보더니,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물에 걸리는 꿈은... 곤란한 상황이나 곤욕을 치를 가능성... 음... 잘 안 이어지는데? 아, 알았다!”

“뭔데?”

“바람을 피우다가 걸려서 나한테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뜻 아닐까?”

“그만 좀 해라. 바람은 무슨 바람을 피운다고 그래.”


농담이라고는 해도 살짝 어이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마음을 풀어주려는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전문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

“전문가?”

“응. 점집에라도 가 보는 게 어때?”

“뭐?”


아내가 점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진우는 조금 놀랐다.


“가볍게 상담받으러 간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은데.”

“말도 마라, 점은 무슨 점이야?”


진우는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아내는 꽤 진지한 모양이었다.


“뭐든 의미를 알 수 없으니까 무서운 법이야. 어설픈 해몽이라도, 답을 듣고 나면 덜 신경 쓰이지 않을까? 그러지 말고, 한 번 가 봐.”


어딘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심쩍은 말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결국 아내의 등쌀에 밀려, 알았다고 하고 말았다.


아내의 말에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었다. 일부러 품을 들여서 용한 점쟁이니 하는 사람을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돈이 아깝다. 잘 생각해 보니 집 근처 대나무 공원 앞에 천막들이 죽 늘어서 있던 풍경이 떠올랐다. 타로 카드니, 궁합이니 하는 단어들이 천막마다 붙어 있는. 진우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대나무 공원 방향으로 걸었다.


집 근처라고는 해도 걸어서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고 보니 이쪽 길로는 도통 올 일이 없었지...”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대나무 숲이 멀찌감치 보였다. 컴컴한 도심이 불쑥 솟아오른 대나무들이 우습게 느껴졌다. 공원 앞에 늘어선 천막들을 대충 둘러보다가, 살짝 무뚝뚝해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 있는 천막에 냉큼 들어섰다. 이 정도가 딱 좋다. 친근하게 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과는 엮이기 싫다.


이야기를 걸어 보니, 역시나 생긴 대로 무뚝뚝한 할머니였다.


“그러니까, 낯선 여자에게 쫓기다가 그물에 걸리는 꿈이란 말이지요?”

“예.”

“흐음...”


노파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까딱거리며 천천히 말했다.


“바람을 피우다가 부인에게 걸려서 혼나는 꿈이 아닐까...”

“바람은 안 피웁니다.”


아내에 이어서 여기서마저 그런 이야기를 듣다니, 내가 그렇게 바람피우게 생겼나? 하고, 진우는 살짝 자괴감에 빠졌다.


“어쨌거나 좋은 꿈은 아니에요. 멀지 않은 미래에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테니, 피하라고 조상님이 알려주시는 거지요.”

“어떻게 피합니까?”

“일단 바람기를 끊으시고...”

“안 피운다고요!”

“뭐, 그렇겠지요.”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히죽거리더니, 웃음을 뚝 그치고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물이 있는 곳을 피하세요.”

“그물이 있는 곳이라니...”

“어디까지나 그물은 비유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물 같은 것을 피하란 말이지요.”

“그물 같은 것...이라고요?”

“예. 예를 들면 거미줄, 감옥, 철조망... 그러니까 격자가 있는 곳은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진우는 살짝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말하는 것은 엉망이지만, 이 여자,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격자무늬를 피하라고. 격자무늬. 와닿지 않는 말이다. 뭐가 있지? 바둑판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바둑을 둘 일은 없다. 격자무늬와 엮일 일이 있기는 한가?


여자는 그 이상의 해석을 해 주진 않았다. 어쩐지, 그러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진우는 어쩔 수 없이 천막을 나와 집 방향으로 걸었다. 어딘가 찜찜하다. 오히려 이곳에 오기 전보다 더.


격자무늬, 격자무늬.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호등 앞에 멈춘 순간, 건널목이 진우의 눈에 들어왔다. 사다리 모양의 하얀 선. 문득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것도, 격자무늬에 속할까?”


속한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란불이 되었지만, 발을 떼기가 겁이 났다. 쫓기는 꿈. 그물에 휘감기는 꿈. 그건 혹시, 차에 치여서 건널목에 쓰러지는 상황을 비유한 게 아닐까? 평소에 점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진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강렬한 불길함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진우의 코앞에서 빠르게 차가 지나갔다. 진우는 놀라서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야...”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가다가, 문득 진우는 보고 말았다. 손바닥의 빨간 격자무늬 자국을.


“격자...”


순간, 진우는 번뜩 깨닫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보도블록. 네모 반듯한 격자무늬에 가까운 선. 왜일까, 왜 이렇게까지 공포에 휩싸이고 마는 걸까. 진우는 보도블록의 격자가 그물이 되어 자기를 덮치는 환상에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물, 그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잘 보니 온통 격자투성이다. 네모난 유리창으로 가득한 빌딩, 아파트, 쇼윈도... 어느새 자신이 격자로 촘촘히 짜인 그물 안에 갇혀 있었음을 깨닫고, 진우는 불가해한 공포에 휩싸였다. 온 세상을 덮은 격자가 좁혀 들어온다. 빌딩이, 아파트가 진우를 향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보도블록이 점점 오목해지며 진우의 발을 빨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진우는 뒤돌아서 달렸다. 공원을 향해서.


하지만 대나무 숲 산책로에도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다. 진우는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었다. 보도블록 따위가 있을 리 없는, 순수한 흙바닥 길로. 숲속에 들어가 대나무 향을 맡으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포근한 흙의 감촉이 진우의 두근대는 심장을 어루만졌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진우는 한숨을 쉬고 피식 웃었다.


“바보 같기는...”


무엇에 그렇게 놀랐던 걸까. 그런 바보 같은 꿈 때문에, 그런 바보 같은 해몽 따위에... 하지만, 그렇다고 보도블록을 걸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대한 피하고 싶다. 진우는 그대로 숲속을 걷기로 했다. 이 숲을 질러나가면 집으로 통하는 후문 쪽 골목이 나올 것이다. 거기서부터 냅다 뛰자. 그렇게 결심했다.


빽빽하게 대나무가 돋은 숲을 지나가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뻗어 나온 가지들이 툭하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나무 잎이 얼굴을 스치기도 하고, 대나무 가지가 뒤에서 어깨를 건드리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와중에, 진우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위화감이라기보다는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신경이 쓰여서 죽을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하며 걷다 보니, 대나무가 비교적 덜 빽빽한, 공터 비슷한 곳에 이르렀다. 보름달이 아래로 내리쬔다. 어쩐지 방향 감각을 잃을 것만 같아서 고개를 들고 휘휘 둘러보다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째서.”


처음에 본 것은 빨간 머플러였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빨간 머플러. 그리고 이어서,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진우를 노려보는 충혈된 눈. 크게 벌어진 입. 그리고, 갈퀴처럼 진우를 향해 뻗은 손. 그 여자였다. 꿈속의 여자. 비슷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분명히 그 여자였다.


“뭐지? 그 꿈인가?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어느새...”


멍하니 중얼거리던 진우는, 여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힘겹게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뛰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뭐야아아아...?!”


헐떡거리며, 입에 찐득한 침을 흘리며 진우는 뛰었다. 잡힌다. 잡힌다. 죽을 만큼 뛰지 않으면 잡히고 만다. 그런 생각이 진우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진우는 뛰었다. 마구잡이로 뻗은 대나무 이파리가 점점 더 많이 진우의 얼굴을 스치며 생채기를 냈다. 길게 뻗은 대나무와, 이리저리 뻗은 가지가 점점 더 많이 눈으로 뛰어들었다. 진우는 정신없이 뛰는 와중에도, 뭔가를 깨닫고 있었다. 그 기시감이 뭐였는지를. 빽빽하게 뻗은 대나무와 이리저리 얽힌 이파리와 가지, 그것들이 촘촘하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격자무늬를. 여자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그물 속으로 점점 더 파고드는 자신의 모습을.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정신이 들었을 때, 진우는 병원에 있었다. 대나무 숲 끝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순찰 중인 경찰이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다고 한다. 이미 하루가 지나 있었다.


문병을 와 준 경찰에게는 극진한 감사를 표했지만, 경찰의 방문은 진우의 문병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경찰은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낯선 여자의 사진을.


“이 사람을 알고 계신가요?”


진우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옷차림이 같다. 그 여자와. 꿈속의 여자와. 그 빨간 머플러만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표정이 달라서 그렇지, 잘 보면 얼굴도 닮은 것 같다. 사진으로 보니 평범한 여자다. 무섭기는커녕 해맑기만 한, 아직 어린 여자.


진우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경찰을 바라보았다. 경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제 선생님이 쓰러져 있던 그 시각쯤에 살해당한 피해자입니다.”

“살...해요?”

“그 대나무 숲에서요.”


진우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살해, 라는 말만 계속 떠다녔다. 경찰은 그 후로도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소득이 없겠다 싶었는지 맥 빠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진우는 그대로 멍하니 누워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경찰은 진우를 찾아왔다.


병원을 퇴원하고 나서도, 진우는 수시로 경찰서에 불려 가야만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자신이 용의자라는 사실을. 늦은 시각 젊은 여성이 살해당한 대나무 숲. 그 숲에 있었던 단 한 명의 수상한 남자. 의심을 받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살인 혐의.


그 말이 진우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사람을 죽였다고 의심받고 있다. 경찰에게. 이대로 체포당하는 걸까? 살인죄를 덮어쓰는 걸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의심도 들었다.


정말로 그게 오해일까 하는.


“내가... 죽였나?”


그 의심은 점점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여자에게 쫓기던 자기가, 결국 붙잡힐 위기에서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격투 끝에, 여자를 죽이고 말았다. 말이 되는 이야기다. 기억에는 없지만.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실인 것만 같았다.


그 생각에 집착할수록, 점점 삐뚤어진 욕망이 진우를 침식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더욱 알고 싶다. 내가 어떻게 그 여자를 죽였는지.


“그 사람은... 어떻게 죽었나요?”


경찰의 조사를 받는 와중에, 그렇게 묻고 말았다. 경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래라면 대답해 줄 리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진우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뭐라도 입을 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닫을까 봐 두려웠는지 경찰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교살입니다."

"...예?"

"목이 졸려 죽었어요."


진우는 망연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이 두 손으로, 그 여자를...


경찰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더니, 툭 던지듯 내뱉었다.


"끈... 아니, 직물 같은 것으로 목을 조른 흔적이 있었습니다. 흉기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요."


순간, 진우의 머릿속에 뎅 하고 종이 울렸다. 직물. 그래도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머플러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수많은 의문을 깔아뭉개고 서 있는 확신. 그 확신의 발밑에서 불만 서린 의혹의 목소리들이 부글거렸다. 머플러라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째서?


‘나를 만났을 때 여자는 머플러를 하고 있었지만, 경찰이 보여준 사진엔 머플러가 없었어.’


머플러가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그 사진은 생전 사진이 아닌가. 진우가 처음 그 여자를 보았을 때보다 이전의 사진, 이전의 모습이란 말이다. 시체 사진에 머플러가 없었던 거라면 모를까, 그런데 왜 확신했는가. 머플러라고. 대체 왜, 왜, 왜.


'...주름 없는 머플러.'


그렇다. 그것이다. 꿈속에서도, 대나무 숲에서도 주름 하나 없던 머플러. 그럴 리가 없다. 주름 없는 머플러라니. 목에 감은 머플러에는 어떻게든 주름이 생긴다. 무게가 있으니까. 아주 팽팽하게 잡아당기지 않는 이상...


'사진에 머플러가 없는 건, 애초에 그 머플러가 그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진우의 머릿속에 그날의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빳빳하게 당겨진 머플러 위, 붉게 부풀어 오른 얼굴. 터질 듯이 튀어나온 충혈된 눈... 커다랗게 벌어진 입. 그것은, 뒤에서 목을 졸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손, 진우를 향해 뻗은 손, 한 걸음, 힘겹게 억지로 내디딘 발. 그런가. 그것은


‘도와주세요.’


대나무 숲에서, 등 뒤의 누군가에게 머플러로 목을 졸리고 있던 그녀가 발견한 가느다란 딱 한 줄기 빛. 자신과 눈이 마주친 남자. 진우.


‘도와주세요.’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며,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한껏 벌린 채 힘껏 목격자를 향해 팔을 뻗고, 도움을 청했다. 힘겹게 발을 억지로 앞디뎌, 앞으로 나오려 했다. 그리고 그 구조 신호를 받은 남자는, 단 한 명의 목격자는.


"...도망쳤다."


그제야 그동안 꾸었던 꿈의 정체가 환하게 드러났다. 그 꿈은 무슨 길몽도 흉몽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였다. 진우가 만나게 될 미래의 풍경 그대로. 목이 졸린 여자가 진우에게 도움을 청하고, 진우는 돌아서서 대나무 숲 그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지몽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죽는 순간에 간절하게 솟아난 그녀의 바람이, 진우를 향한 마음의 소리가, 시간을 초월해 보여 준 꿈일지도 모른다.


진우는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았다. 여자가 쫓아오는 꿈도, 그물에 걸리는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밤, 그 눈을 만났다. 사진에서 본 그 여자의, 생전의 그 얼굴. 그 눈은, 묻고 있었다. 어째서냐고 어째서 구해주지 않았냐고 어째서 도망쳤냐고.


진우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녀와 마주 앉아 침묵의 고통을 견뎌낼 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지난날의 꿈보다 더 괴로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우는 그 물음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다. 영원히.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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