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

밤마다 기어다니는

by 허아른



밤이다. 뿌연 달빛이 창가에 빛의 얼룩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딘가를 비추는 것처럼, 그리고, 나를 부르는 것처럼. 오라고, 와서 보라고. 와서, 창 아래를 보라고.


얼룩진 달빛이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그럴 때면, 보지 않으려 해도 보지 않을 수 없다.

옆집 마당을.


그 하얀 것들이 여전히 기어 다니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숙여 옆집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까만 땅. 자세히 보면 하얀 뭔가가 기어 다니고 있다. 여기서 보면 마치 굼벵이 떼 같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저것들이 무엇인지를.


처음 내가 이사 왔을 때, 옆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었다. 그럼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집이었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넓은 마당의 단층주택, 심지어 불에 타기라고 한 것처럼 까만색 일색이었다. 벽돌담도, 문도, 건물도, 마당의 흙도. 5층짜리 빌라들 사이에 자리 잡은 그 집은, 위화감 그 자체였다. 불길함 그 자체였다.


그 집에 부부가 이사 온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부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두 사람은, 처음에는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의, 지나치게 크지 않은가 싶은 검은자위를 빼면. 두 사람 다 이웃들과 인사도 잘했고, 특히 그 여자는 동네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능숙하게 수다를 떨었다.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래...


이상하지 않았다...


부부가 이사 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며칠간 집에서 나오지 않던 여자가, 갑자기 만삭이 되어 나타났다. 갑자기. 그녀와 마주치는 사람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금세 표정을 고치고 덕담을 건넸다. 축하한다고.


하지만 여자는 축하 인사를 받을 때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마치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벌써 만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조금도 흔들림 없는 그 까만 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까만 눈은... 위화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그래, 그건 확실히 이상했다. 아니지, 그건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모든 게 이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배가 다시 홀쭉해져서 나타났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여자가 출산을 마쳤나 보다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들 그녀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어떻게 저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몸에는 개인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자마자 배가 홀쭉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몸이 고무로 되어있기라도 한 게 아닌 이상...


여자는 이번에도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러다 한마디 내뱉은 말이


“아아, 요즘 배가 너무 나와서 다이어트를 좀 열심히 했거든요.”


그 말을 들었을 때만큼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굳었다고 해야 할까, 질려버렸다고 해야 할까. 너무나 비일상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갑작스럽게 몸을 내리누르는 공포. 그것이 공포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공포.


뭘까, 이 여자는. 지금 임신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걸까.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걸까. 살이 쪘다고? 다이어트를 했다고?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지만 누구도 따져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그녀의 태도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그 검은 눈, 마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옴짝달싹 못하게 조여드는 그 눈은 마치 뭔가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 같은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걸로 하는 거다.

그렇게 믿는 거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한 달은 지났을까? 아니,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맙소사...


집 앞에서 마주친 그 여자는 또다시 만삭이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저건 복부비만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이,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이상하다 모든 것이 이상하다. 저 집은.


여자에게서 느끼는 위화감이 커질수록, 옆집이 더 신경 쓰였다. 밤에도 잠을 못 이룰 만큼. 그렇게 신경을 옆집에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귀가 점점 예리해졌다. 옆집의 풍경이 아주 자세하게 귀로 흘러들어왔다. 바람에 흙이 쓸리는 소리,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고양이가 작게 야옹거리는 소리. 그리고, 스스슷 스스슷하는 이상한 소리...


그래도 참았어야 했다. 신경이 쓰이면 쓰이는 대로,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대로, 참아야 했다. 스스슷하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달밤에 창문을 열고, 옆집 마당을 내려다보아서는 안 됐다. 흐린 달빛에 의지해 실눈을 뜨고 내려다보아서는 안 됐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말았다. 그리고, 보았다. 검은 흙속에서


(규-다-스다...)


하얀 뭔가가


(규-다-스다...)


여러 개가


(규-다-스다...)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것을.


그것은 알몸의 하얀 아기들이었다. 하얀 아기들이 검은 흙속에서 기어 나와, 마당을 기어 다녔다. 어딘지, 젖은 잿더미 같은 질감의 검은흙을 헤치고,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하나 같이 한 살 정도로 보였지만, 어떤 아기는 너무나 작고, 어떤 아기는 너무나 컸다.


그것들은 제각각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바쁘게 기어 다녔다. 뭔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도 보였고, 뭔가를 쫓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때때로,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조그마하지만, 검은자위가 가득한 눈으로. 그것은 아주 순진한 아기의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나는 마치, 뱀 앞에서 굳은 쥐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기이한 소리를 내며 기어 다니던 그것들이 하나둘 땅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침이 되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집밖으로 나섰을 때, 나는 그 부부가 외출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자의 배는 홀쭉했다. 점점 배가 부르고 들어가는 빈도가 빨라지고 있다. 동네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하지 않았다. 황급히 피하거나 뒤에서 수군거릴 뿐이다. 알고 있다. 모두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뭔가 불길하다는 것을, 뭔가...


(규-다-스다...)


무섭다는 것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을 꾸었던 건 아닐까. 이웃집의 마당을 내려다보는 꿈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히려 이웃집을 더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더, 창을 열고 내다보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그것들의 움직임은 더 잘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도 내 시선을 더 잘 눈치채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이 나를 올려다보고,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입을 오물거리며. 그것들은 볼록한 볼과 입술에 검은흙을 점점이 묻힌 채,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뭔가, 먹고 있구나.


그것들이 흙 위를 기어 다니고, 때때로 흙에 머리를 묻고, 고사리손으로 흙을 파대는 것은, 먹이를 찾기 위한 것이었구나. 그런 비현실적인 상상에 납득되고 말았다.


(규-다-스다-규우우우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침이 되면 또다시,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어쩌면 같은 꿈을 또 꾸었을 뿐일지도 몰라하고. 다시, 다시 창 밖을 보게 된다. 보지 않으면, 확인하지 않으면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다.


꿈일지도 몰라...라고 여긴 것은, 날이 갈수록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아기인 채로, 몸만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부풀고 있었다. 하얀 몸의 여기저기 볼록해져서는 마치 굼벵이 같은 모습이 되어, 계속 저렇게 커져가다가는, 알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아기들이, 굼벵이들이, 알들이 점점 커져서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더욱더 커져서, 나를 내려다보며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규-다-스다-규우우우우...)


알, 알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그것들이 옆집 부부의, 그 여자의 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수없이 아기를 낳고, 그 검은 흙속에 풀어 키우고 있다고. 그것들이 커서, 그 여자처럼 되는 걸까. 그 부부처럼 되는 걸까. 계속해서 겹쳐가는 망상이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즈음,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흔적도 없이. 고양이에게 다정한 동네다. 제 식구처럼 생각하며 이름을 붙여주는 주민들도 있다. 저마다 당황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걱정할 뿐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고양이들이 그 집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규-다-스다...)


몸이 부풀어 올라 애벌레처럼 되어버린 그것들은 이제 마당이 비좁아진 모양이다. 서로 몸을 부비며, 부딪히고, 미끄러지며 다닌다. 어떤 녀석은 담장에 달라붙어, 마치 이쪽으로 올라오려는 듯 버둥거린다. 여전히 아기다운 순진한 웃음을 머금은 채. 이목구비를 집어삼킬 듯 부풀어 오른 볼에 여러 가지 색의 털과 빨간 피를 묻힌 채, 나를 올려다본다. 까만 눈으로 나와 눈을 맞춘다.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가득 찬다. 가득 찬다. 저 마당이 그것들로 가득 찬다. 서로의 몸에 눌리며, 서로의 몸을 비비며


(규-다-스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을. 그것들의 몸이 커져서 마당이 비좁아진 것뿐, 그것들의 수는 실제로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들의 몸이 커져갈수록


(규-다-스다...)


그것들의 몸이 커져갈수록


(규-다-스다...)


그 여자의 배도 더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것을


(규-다-스다...)


무서운 상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뇌가 필사적으로 생각을 거부했던 탓일까.

마당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여자에겐 이제 먹을 것이 없을 것이다.


이제야 알아차렸다. 저 마당은, 커다란 목장이었다는 것을.


스스슷, 스스슷하는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온다. 점점 더 위로 올라오고 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배가 부푼 여자의 몸을 떠올렸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결국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이 부르는 대로.






(규-다-스다-규우우우우...)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빨간 머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