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불쑥 편지를 보내서 죄송합니다. 놀라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편지에는 수표가 한 장 동봉되어 있습니다. 그 돈은, 제가 귀사로부터 진 빚입니다. 정확히는, 귀사가 전국적으로 운영 중인 한 마트 지점으로부터 진 빚이죠.
변명이 되진 않겠지만, 젊은 시절 저는 가난했습니다. 하루 걸러 한 끼를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배가 고플 때면 집 근처 마트에 가서, 시식 코너들을 찾아 돌았습니다. 이쑤시개 하나에 꽂힌 고기 한 조각, 종이 소주컵에 담긴 라면 한줄기, 그런 것들을 요기 삼아 먹었죠. 물론 시식 코너를 다 돈다 해도 배를 채울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트에 갔습니다. 처음 온 사람인 척하고요. 물론, 다들 알았겠죠. 그래도 그때 모른 척해주신 분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배를 달래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은혜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은혜를, 저는 죄로 갚았습니다. 역시 변명이 되지 않겠지만, 허기가 앞을 안 보이게 만들더군요. 마트를 들를 때마다 눈에 뜨이는 맛있는 음식들, 음료수니 통조림이니 하는 것들이 점점 신경 쓰였습니다. 시식코너를 돌며 한 조각 한 조각 맛볼 때마다 오히려 더 욕망이 강해졌습니다. 통째로 먹고 싶다. 그런 욕망 말입니다.
그 욕망은 결국 자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훔쳤는지 모르겠지만, 마트에서 돌아오면 품속에 먹을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하지만 배가 고프면 어쩔 수 없이 마트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물건을 훔치고, 집에 돌아와 보면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품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고, 어느새 저는 무감각해져 갔습니다.
도벽이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일은 그 마트에 갈 때만 일어났으니까요. 집 앞에 있던 그 지점이 사라지고, 도벽도 사라졌죠. 거짓말처럼. 얼마 되지 않아 괜찮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 끝에 10년 정도 후에는 부자라고는 못해도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며 살 수 있게 되었죠. 삶에 여유가 생기고 행복이 깃들기 시작하자, 그 구석에 숨어있는 죄책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죄, 10년 전의 잘못. 그것은 마치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모래조각처럼, 숨 쉬듯이 불편하게 만들었죠.
죄를 고백해야 한다. 빚을 갚아야 한다. 끊임없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지점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죠.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과거를 떨칠 수 없다는 것, 신발 속에서 발바닥을 찌르는 모래알을 꺼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젊은 날의 배고픔만큼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고민한 끝에, 편지를 써서 본사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도둑질로 지은 빚을 갚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편지에 수표를 함께 동봉해 보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
딩동
“등기입니다.”
“네, 금방 나갈게요.”
나는 급하게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는 조끼를 입고 오토바이 헬멧을 푹 눌러쓴 집배원이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우편물을 받아 들고, 급하게 봉투 겉면을 보았다. 봉투에는, 한 대기업의 마크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오래된 할인점을 운영하는 회사다. 나는 묵묵히 그것을 들고 거실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뜯어보았다.
봉투 속에는 또 다른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분명히 내가 그 회사 앞으로 보냈던 봉투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표 한 장과, 편지지가 들어있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편지지를 펼쳐보았다. 예상대로, 그것은 내가 보냈던 편지 그대로였다. 수표를 집어 들여다본다. 내가 보낸 수표다.
반송... 아니, 반송과는 다르다. 그들은 이 편지를 제대로 받았고, 그것을 그대로 다른 봉투에 넣어 내게 부친 것이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일까, 왜...?
문득 생각이 다른 데 미쳤다. 편지봉투를 새로운 편지 봉투 안에 넣었다는 건, 어쩌면...
그 봉투 안에는 내가 보낸 편지 외에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급히 버렸던 봉투를 꺼내 안쪽을 더듬어 보았다. 있다.
...편지가.
#3.
총무실 담당자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임원진에서 논의한 끝에, 수표와 편지는 반송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믿지 않거나 장난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편지를 받은 후, 저희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사실 확인 작업을 했으니까요.
언급하신 해당지점에서 실제로 다수의 도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확인되었습니다. 손실 금액도 확인되었고, 말씀하신 정황과 일치하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다만, 당시의 손실금액은 본사 입장에서는 사고 범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회사가 크게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당시 도난 사건 빈번의 건으로 인사 조치와 폐점 등 필요한 조치를 다 했으며, 더 이상 이 건에 엮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본사의 판단입니다.
본사의 입장은, 우리가 귀하로부터 피해를 입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금액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상되는 피해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꼭 사과를 하셔야겠다면 피해를 실제로 입은 사람에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당시 도난 사건에 대한 본사 차원의 조치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해당 지점의 관리자가 물건을 착복한 것으로 의심되어 해고 조치하였습니다. 해당 관리자는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해고된 후에도 매일같이 본사를 찾아와 항의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그 결정을 이제 와서 번복할 생각이 없으며, 해당 지점의 도난은 온전히 관리자의 책임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 외의 어떤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내신 편지와 금액은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4.
나는 잠시 편지를 붙잡고 망연자실해 있었다. 무슨 말일까. 내가 뭘 읽은 건지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시, 또다시 편지를 되풀이해 읽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도난 사건 때문에 관리자를 해고했고, 이제 와서 내 사과를 받아들이면 그 해고가 잘못된 것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가? 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책임이 어쩌니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혼란한 머리를 쥐어뜯으며 편지를 되새기는 동안, 점점 하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해고되었다는 관리자의 이름. 어라? 이 이름... 어디서 보았더라? 최근에 보았던 것 같다. 아주 최근에... 명찰. 아까 집배원이 달고 있던 명찰이 그런 이름 아니었나? 그런 우연이...
순간, 또 다른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명찰. 그리고 조끼. 당연히 집배원 조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조금... 다르다. 색깔도 그렇고 그것은... 마트 직원이 입는 조끼였나? 후다닥 편지봉투를 집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없다. 어디에도 없다. 우체국 소인이.
설마, 왜...
‘꼭 사과를 하셔야겠다면 피해를 실제로 입은 사람에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해고된 후에도 매일같이 본사를 찾아와 항의하고 있습니다.’
설마, 설마...
어쩐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현관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현관문으로 걸어가, 도어스코프를 들여다보았다.
문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렌즈 너머는, 까맣다. 아주, 까맣다.
아마도, 그 남자도 맞은편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