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건 믿을 수 없다. 더구나 어릴 때의 기억은 더더욱.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기억한 나머지, 가끔은 굉장히 부조리한, 현실성이 떨어지는 기억이 생겨나고는 한다. 아마 그런 것이리라. 아영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괴상한 기억. 정말 그것이 진짜 있었던 일이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자기가 미친 건 아닌지 되물을 만큼, 그런, 어이없을 정도로 괴상한 기억이었다.
그래, 한 달 남짓 다녔던 그 학교에, 처음 전학 갔던 날부터의 기억이다.
"이 친구는 오늘 전학 온 아영이라고 해요. 다들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고. 아영이는 진희 짝이 될 거예요. 자, 아영아. 저쪽 자리에 앉으렴."
아영이는 살짝 얼어서 긴장한 표정으로 빈자리에 가 앉았다.
"안녕?"
"으응... 안녕?"
진희의 인사를 받아주기는 했지만, 아영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뭐람 이 학교, 이 교실은. 처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아영은 용기를 내어 옆자리의 진희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뭐야 저건?"
"응? 뭐 말이야?"
"저것들 말이야."
진희는 목을 빼어 교실을 둘러보더니, "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 맥없고 일상적인 태도에, 아영은 소름이 쭈뼛 섰다.
저것들, 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교실 구석구석 빈자리에, 인형들이 앉아 있다. 그것도 다 팔이 뜯어지거나, 눈 한쪽이 없거나, 진흙탕에 구른 듯 더러워졌거나, 아예 온몸의 솔기가 터진 인형 따위가.
"반장."
"반장?"
"응. 반장이야."
저 인형들이 반장이라고? 인형을 반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놀랍지만, 그런 반장이 여럿이라는 것도 왠지 섬뜩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다들, 오늘 어떤 날인지 알고 있나요?"
옆에 있던 진희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반장 뽑는 날이요!"
"그래요. 반장을 새로 뽑아야 해요."
반장을 새로 뽑는다니, 그게 무슨 소릴까. 저렇게 많은 반장들이 있는데.
"반장을 누가 하는 게 좋을까?"
"정훈이가 했으면 좋겠어요!"
진희가 발랄하게 외치자,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정훈이라는 남자아이를 추천했다. 그때, 정훈이란 아이가 진희를 돌아보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것은 분노, 저주... 그런 것이었다. 굉장히 소름 끼치는, 무서운 표정이었다.
반장이라는 건 뭘까.
아영은 히죽거리는 진희의 팔을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저기, 있잖아."
아영은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 교탁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저 사람도... 반장이야?"
진희는 눈이 동그래져서 반문했다.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잖아?"
"그, 그렇지?"
역시 그렇구나. 선생님이구나. 하지만 어째서... 아영은 작은 아이들용 책상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앉아 있는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의혹에 빠졌다. 어째서, 어째서 여자 목소리를 내는 걸까. 왜 저기 앉아 있는 걸까.
"그, 그럼... 저건...?"
아영은 교탁 쪽을 가리켰다. 진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선생님이야."
혼란스러웠다. 아영의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탁 위에 앉아 있는 저것은, 분명히 인형이다. 중세 아가씨 복장의 프랑스 인형. 어째서인지 치마와 옷소매가 붉게 물든, 그런 인형. 선생님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이게 복화술이라는 걸까. 그날 정훈이라는 아이는 결국 반장이 되었다. 굉장히 못마땅한 얼굴 표정을 한 채로.
며칠 후, 어쩌면 그다음 날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간 아영은 또다시 이상한 상황을 마주했다. 진희의 자리에, 인형이 앉아 있었다. 목 부근이 터져서 솜이 빠져나온 봉제 인형이. 여자아이 모습의... 잘 보니, 진희를 닮은 것도 같다. 아영은 그 인형 옆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아무도 그 인형에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왜 이 이상한 상황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 학교는 대체 뭘까.
집에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했지만, 엄마는 황당해할 뿐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하고,
"그리고 남자 선생님이 여자 목소리라니, 너희 담임 선생님은 여자잖니."
라고.
엄마가 학교에서 면담을 할 때 만난 선생님은 분명히 여자였다고 했다. 인형 따위가 아니라, 분명히 여자 선생님이었다고.
"복장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아영은 엄마의 말에 전율했다.
뭐지, 그 풍경은 나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내가 이상해진 건가.
평범한 학교다. 평범한 교실이다. 그래, 그래...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때가 왔다.
그래,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아영은 전율을 느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언제나처럼 인형이 가득 찬 곳. 천천히, 천천히 둘러본다. 그렇다. 인형이 하나 더 늘었다. 장난꾸러기 남자애 같은 인형이, 두 손과 두 발이 묶인 채, 두 눈이 뽑힌 인형이... 그 자리는 분명...
반장.
그래, 반장으로 선출된 그 아이, 정훈이의 자리였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아영은 몸을 벌벌 떨었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잠시 후, 선생님이 들어왔다. 아니, 선생님들이라고 해야 하나. 대체 어느 쪽이 선생님일까.
"여러분, 오늘 반장을 새로 뽑아야 해요."
온몸에 개미떼가 기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아영은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반장은, 정훈이는요? 어디로 갔나요?"
그러자 선생님은, 그 인형은... 어째서일까, 측은하다는 듯한 표정을, 표정이라고? 그럴 리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반장은 전학 갔어요."
"저, 전학이요?"
"그래, 반장은 나쁜 짓을 하는 바람에 전학을 가게 되었단다."
그렇게 말하면서, 선생님은, 아니 그 인형은, 슬픈 눈으로, 뭐? 슬픈 눈이라고? 아니, 어쨌든 슬픈 눈으로 내 옆자리의 인형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본 것처럼 느꼈을 뿐일까.
그것은, 진희의 자리, 진희를 대신한 인형. 온몸이 지릿지릿하고 저려왔다. 이빨이 딱딱 부딪힌다. 귓가로 선생님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다음 반장은 누가 좋을까?"
"아영이요~"
힉, 히익...
아이들이 아영이를 연호하는 와중에, 아영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지럽다. 안 돼, 싫어... 아영은 어느 순간,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교실을 뛰쳐나가, 교문을 향해 달렸다. 숨이 헐떡거리고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 집까지 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으로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썼다.
싫어, 싫어, 싫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엄마가 아무리 달래고 야단을 쳐도, 아영은 결코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든, 뭐가 진실이든 그 교실엔, 그 학교엔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아영은 거의 목숨을 걸고 발악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나서야 엄마가 학교에 혼자 다녀오고, 전학이 결정되었다.
그것이 아영이 기억하는 그날의 일이다.
전학을 가고 나서도, 아영이는 등교하지 않았다.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음식도 물도 제대로 마시지 않았다. 점점 아영이는 말을 잊고, 움직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억만은 여전히 아영이에게 남아있다. 그 기억은 언제까지나 품고 가야 할 상처일지도 모른다. 아영이만이 아니라, 엄마인 나에게 있어서도.
"그렇지, 반장?"
내 말에 동의하듯, 아영이의 유리 눈이 한 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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