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화(豫知畫)

by 허아른



딸은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크레파스를 처음 사주었을 때, 그 아이가 처음 그렸던 것은 분명 만화였다. 형태도 구도도 엉망이었지만.

그때부터 아이는, 만화를 읽는 것보다 그리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의 열정이란 금방 식는 것이지만, 딸은 계속해서 만화를 그렸다. 한 컷짜리 만화를. 뭐든 열심히 하면 느는 법이라지만, 딸의 실력은 정말 빠르게 늘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쯤에는 이게 정말 아이가 그린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멋진 극화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식 자랑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 다른 부모들이라면 딸이 그린 그림들을 남들에게 두고두고 자랑할 것이다. 어쩌면, 액자에 넣어 평생 벽에 걸어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그림들은, 남에게 보여줄 수 없다. 나는 딸이 그림을 그리는 족족, 그것을 숨겨두고 나 혼자 보고 있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유가 있다. 그 그림은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내가 그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었다. 그해, 남편이 죽었다. 긴 투병 끝의 병사였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지막은 아니었다.


아주 오랫동안 병상에서 고통스러워한 것에 비하면, 죽기 직전에는 오히려 훨씬 편안해 보였다. 힘들게 쥐어짜 낸 목소리로 ‘내가 죽어야 하는데...’하고 한탄하던 날들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작게 미소를 띠고 유언을 남길 수 있을 만큼의 그런 죽음.


혼자 가서 미안해요. 우리 아이 끝까지 잘 부탁해요.


그것이 유언이었다. 나는 남편의 마지막 말에서 연민보다 슬픔보다 먼저, 공포를 느꼈다. 남편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는 아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뭔가, 뭔가 본능적인 어떤 것. 그게, 무엇이었을까.


한동안 그 이상한 기분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병상의 남편이 그 말을 하는 장면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건, 참 편리하다. 실체가 눈앞에 없으면, 조금씩 조금씩 지워진다. 그날의 그 장면은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 갔다. 마치 점점 픽셀이 뭉개지는 것처럼, 그렇게 흐릿해지다가 결국 엉성한 구도만이 남았을 때. 남편의 얼굴마저 흐릿해졌을 때, 나는 깨달았다.


기시감.


그날, 남편이 죽던 날 내가 느낀 것은 기시감이었다. 나는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아니, 그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딸이 그린 만화. 아마 그보다는 좀 더 어렸을 때, 그 한 컷짜리 만화.


병상에 누워있는 남자, 그리고 거기에 달린 말풍선. 그래, 그림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혼자 가서 미안해요. 우리 아이, 끝까지 잘 부탁해요.


아니,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기시감이라는 것은 뇌의 기억 착각이나 신경세포의 혼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딸이 어렸을 때 그린 그림들을 뒤져보았다. 그 그림이 실제로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있다면 어쩔 것인가. 없다면 안심할 수 있는가. 모른다. 모른다. 그래도...


문득, 그림 한 장에 눈이 멈췄다. 빨간 모자에 하얀 마스크, 회색 재킷을 입은 남자가 삽을 들고 땅을 파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남자의 손목에는 흐릿하지만 반짝이는 수갑이 그려져 있었다. 또다시 기시감이 덮쳐와,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은, 이 장면은.


나는 얼른 그림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작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기사를. 그림과 똑같은 구도의 사진이, 거기에 실려 있었다. 범행 재연 사진이. 범인은 피해자의 전 애인이었는데, 결별을 통보받은 후 피해자를 죽이고 야산에 묻었다고 했다. 사건의 피해자가 딸이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이었기에 잘 기억하고 있다. 딸이 자주 언급하던 선생님이었던 덕에.


나는 그림의 뒷장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그래. 확실하다. 딸은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 그림을 그렸다. 확신했다. 딸은, 지금까지 미래의 장면을 그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딸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만약에, 먼 훗날에, 아이가 충분히 자랐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고 치자. 그리고 딸이 그린 그림이 발견되었다고 치자. 누가 그것을 미래를 그린 그림이라고 믿을까?


내 눈이, 다시 그림을 향했다. 범행 재연 그림. 그래, 범인만이 현장을 재현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딸은, 범인이나 방조자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 어쩌면 이 그림들은, 미래에 아이를 옭아맬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두려웠다.


이 아이의 그림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고민 끝에, 나는 딸에게 약속하게 했다. 어떤 그림을 그리든, 엄마에게만 보여주기로. 딸은 흔쾌히 약속했고, 그것을 지켰다. 딸은 나를 신뢰했다. 딸은 나를 사랑했다. 엄마의 행동이, 자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걸 이해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딸은 나에게 그림 한 장을 선물했다. 그 그림에는, 내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두 명이다. 두 명의 내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딸은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어떤 그림들은, 현실이 되었다. 좋은 미래도, 나쁜 미래도. 딸은 가리지 않고 그렸다. 어떤 것들은 이루어졌고, 어떤 것들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림들은 작은 방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림이 늘어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딸은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날 닮아갔다. 머리를 하거나 옷을 입는 취향도 나와 비슷해졌다. 뒤에서 보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닮아갔다. 딸은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자기만의 시간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림도 점점, 그리지 않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딸이 자기 방 침대 밑에 뭔가를 숨기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래, 종이 같은 것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딸은 언제부턴가 나를 불편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나를, 점점 감시꾼처럼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딸을 보호해야 한다. 죽은 남편과,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딸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밑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이가 쌓여있었다. 그래,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그림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아마도 고등학교 때쯤부터 그린 듯한 그림들이다. 그때쯤부터, 아이는 조금씩 나에게 그림을 숨겨온 것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일까. 나는 그 그림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러면서,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엄마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미래도 점점 많아졌던 것이다. 예를 들어 첫 키스, 좋아하는 남자와의 섹스, 그 외의 이런저런 것들. 커가면서 점점, 보여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그래, 시점이 미래라는 점만 다를 뿐, 그 그림들은, 딸에게 있어서 그림일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렇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씁쓸한 마음으로 그림을 돌려놓으려던 찰나, 신경 쓰이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두 명. 오래전에 아이가 그린 그림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구도가 달랐다. 한 명은 서 있었고, 한 명은 엎드려 있었다. 엎드린 나의 등에는 식칼이 꽂혀 있었다. 어느 쪽이 나이고, 어느 쪽이 딸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얼굴이 보였다면 추측할 수 있었겠지만, 한쪽은 엎드려 있었고 한쪽은 등을 돌리고 서 있었으니까.


나는, 그림을 침대 밑에 돌려놓고, 주방으로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했다. 무엇일까, 무엇을 그린 것일까. 미래, 어떤, 미래.


시계를 보았다. 아이가 돌아오는 건 저녁때쯤일 것이다. 나는 그림 방으로 들어가, 오래된 그림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았다. 뭔가가 거슬렸다.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가 빠져 있다.


아이는 좋은 미래든 나쁜 미래든 가리지 않고 그렸다. 하지만 뭔가 빠져 있다. 그래,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크게 다쳤던 일, 장염으로 한동안 병원에서 고생했던 일, 빠진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이는 자신에게 덮칠 나쁜 미래는 그리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런 미래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그래, 나는 착각한 것이다.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살인 사건의 피해자였던 선생님, 자기 담임 선생님도 아닌데 아이는 그 선생님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 그만큼, 싫어했다. 병상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는 아빠도, 아이는 안쓰러워했을 것이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딸은, 엄마를 좋아했다. 아빠가 죽으면, 엄마가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를, 닮고 싶었다. 엄마처럼 크고 싶었다.


그래, 딸은 미래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그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커가면서, 욕망하는 것들이 점점 바뀌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입 맞추고 싶었다. 살을 섞고 싶었다. 그런 소망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간섭하고 통제하려 하는 엄마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엄마가. 그런 소망을 품게 되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슬슬,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이와 차분히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아이는 그림을 그려버렸다. 그 미래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밖에서,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딸일까, 아니면 택배 같은 것일까. 정적 속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죽은 남편의 마지막 말이.


우리 아이, 마지막까지 부탁해요.


그림에 그려져 있던 것은, 나였을까 딸이었을까.


나는 현관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우뚝 서서 내 손에 들린 식칼을 내려다보았다. 식칼에 내 얼굴이 굴절되어 비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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