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오래 사귄 친구가 있다. 얼굴도 잘생기고 똘똘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또래에게나, 어른에게나. 어디를 가도 싹싹하게 굴고 대답도 잘해서 칭찬을 받고는 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나름의 처세술 같은 게 있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그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잘 웃고 싹싹하다. 아는 사람들은 천성이 좋다고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켜봐 왔던 나는, 나만은 안다.
그 녀석의 속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돌이켜보면 그 아이의 가족들은 묘했다. 녀석을 포함해서, 다들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싹싹하고, 언제나 웃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친절하다. 하지만 속으로는, 힘들어하고 있다. 남을 대하는 것을. 연기하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일종의 가풍이었던 것 같다. 남을 대하는 태도를 계속 연마하고 훈련해 온 가족. 그런 것이다. 그 녀석이 공허해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싫고 좋음에 관계없이 착하고 똘똘한 아이를 연기하는 것이 삶의 목적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의무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동안, 생애주기에 따라 점점 견고하게 생성되었어야 할 자아는 오히려 한없이 쪼그라들어버린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사랑받는 그 녀석이 반짝반짝 빛나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비루해 보일 뿐이다. 타인에게 칭찬받고,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그 녀석이 바람둥이가 된 것도, 그런 공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무게추가 없는 오뚝이와 같다.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고, 그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만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휘청거리는 자신을 지탱해 줄 여자가 필요했다. 많이 필요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만난 여자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자기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는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녀석의 20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녀석은 평생, 스스로 자신의 공허를 채우지 못할 것이다. 녀석의 부모도 어쩌면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삶은 다르다. 가족이 생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얻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그 안정감 덕분에, 나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 사이를 전전하는 녀석의 행동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저 녀석은 매미와 같다. 찾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배우자를.
녀석에게는 아마도 강한 여자가 필요할 것이다. 의심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직선으로 끌고 가 줄 여자가. 옆에서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머리를 잡고 들어 올려 중심을 잃지 않게 해 줄, 그런 여자를.
그리고 서른이 갓 넘은 무렵, 아마도 녀석은 그런 여자를 찾아냈던 모양이다. 아마도,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건,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에게 이야기로 들었을 뿐. 앞으로도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 여자와 만나기 시작한 후, 녀석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었다. 그 공허함도, 안절부절못함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변을 맴돌던 다른 여자들은 일시에 정리되었고, 바람기도 싹 사라졌다.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무게추 없는 오뚝이처럼 텅 빈 내면을. 잘 되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친구가 그 말을 불쑥 건넸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우리, 하나가 되기로 했어.”
전화로 그 말을 들었을 때, 야근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냅다 그 녀석을 만나러 갔다. 의기양양하달까, 홀가분하달까, 그런 멋진 미소를 짓고 있는 녀석을 보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진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뭐가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다. 그날은 꽤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마신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녀석도 꽤나 흐트러졌다. 그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그렇게나 진실한 모습을 나는 그전에는 본 적이 없다.
술자리를 파하고 헤어지려는 찰나에, 나는 문득 중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결혼, 축하한다.”
하고.
그런데 녀석은 그 말을 듣자 묘한 표정이 되었다. 뭐랄까, 어딘가 울상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쓴웃음 같기도 한. 수많은 감정을 얼굴로 흘려보내고 나서, 녀석은 말했다.
“결혼과는 달라. 하나가 된다는 거야.”
의외의 반응에 나는 멍하게 서 있다가, 조심스레 반문했다.
“...동거만 한다는 이야기야?”
그러자 친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작게 말했다.
"알아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로, 녀석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녀석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었다.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아서 회사에서 집으로 찾아갔던 모양이다. 회사 동료가 거기서 실종사실을 알게 되어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에서는 대수롭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친한 친구인 내쪽으로 연락을 해왔다. 경찰에 아는 대로 이야기하고 나서야, 내가 그 녀석의 마지막 목격자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현듯 그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힘들어하고 있지 않을까.
위로차 녀석의 집을 찾아갔을 때, 녀석의 부모는 언제나와 같은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아무리 그런 얼굴로 살아왔다고는 해도, 아들이 실종된 시점에서까지 이런 태도를 보여줄 줄은 몰랐다. 다만, 어딘가 달랐다. 두 사람 모두, 전혀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두 사람은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나가 되기로 한 거니까.”
“그래, 하나가 되기로 했어.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며칠 후, 녀석의 부모님마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런 말을 들었으니까. 하나가 된다는 건 뭐였을까, 그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자였을까. 하나가 된다는 건, 종교 같은 것이었을까.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상한 존재가, 그들을 머리를 잡고 들어 올리듯이, 그들의 삶을 어딘가로 직선으로 끌고 간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내가, 그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애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여서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게 어떤 존재냐고 물어도, 나로서는 도저히 대답할 방법이 없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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