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사람의 얼굴을 한 그것들이.

by 허아른


이 마을에서는 가끔 메아리가 들린다. 동굴이나 산 같은 곳에서 들리는 게 아니다. 길을 걷다가 콧노래를 부를 때, 실내에서 혼자 중얼거릴 때, 문득 들려온다. 메아리가.


마을의 노인들은 그럴 때면, 흉내쟁이가 있다며 두려워하곤 했다.


흉내쟁이라는 벌레가 사람 말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이 마을 사람들은 벌레를 두려워한다. 귀신 이야기 따위엔 코웃음 치지만, 그것이 벌레 귀신이라면 정색을 한다. 벌레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이 동네에서 말이다.


방역 작업에도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 벌레가 나타난 게 아니라, 벌레를 본 것 같은 기분만 들어도 구충 작업을 나올 정도다. 그러니 누군가 길에서 메아리를 들었다면, 그러니까 흉내쟁이가 있다고 신고하면, 즉시 그 구간은 폐쇄되고 며칠 동안 구충 작업이 시작된다. 실내라도 마찬가지다.


이 마을에는, 묘지가 없다.

사람을 묻으면 벌레가 꼬일지도 모르니까.

사람이 죽으면, 화장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메아리는 때때로 들린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 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원음과는 미세하게 다른, 어딘가 파르르 떨리는 듯한 소리, 마치 매미나 귀뚜라미 같은 것이, 날개를 비비는 것처럼. 벌레가 내는 소리라고 상상하는 것도 영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거의 믿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구충 작업이 성가실 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벌레 한 마리 없는 쾌적한 마을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쾌적한, 갈색의 마을에서.


노인들의 벌레에 대한 공포는, 이 마을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이 마을은 한때, 죽음의 땅이 되었다고 한다. 메뚜기떼의 공격을 받아서.


황충이라고 불리는 메뚜기가 있다. 메뚜기 여러 마리가 밀집된 곳에서 한꺼번에 부화하면, 황충이 된다고 한다. 황충은 몰려다니며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것들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논도, 밭도, 집조차도 갉아먹는다.


죽은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마을을 덮친 메뚜기 떼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먹어치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집들이 무너져 지붕이 땅에 떨어지고 나면, 그 지붕을 메뚜기 떼가 덮고 갉아먹었다. 끝없이 날개를 비비면서.


마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떨리는 비명을. 그래, 마치 날개와 날개를 비비는, 메뚜기 떼의 귀 따가운 소리처럼.


메뚜기 떼가 모든 것을 갉아먹고,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지옥 같은 풍경은 멈췄다. 날지도 못할 만큼 뚱뚱해진 메뚜기들은 바닥에 산처럼 쌓여 날개를 버둥거릴 뿐이었다. 겹겹이 쌓인 서로의 무게에 짓눌려 죽어가면서, 쉴 새 없이 날개를 비볐다. 그 비명 소리가 땅을 덮었다. 그 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메뚜기떼는 시체로, 다시 흙으로 변했다. 마을은 갈색의 사막이 되었다. 메뚜기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죽어갔다. 메뚜기가 날개를 비비는 소리처럼, 허약하고 새된 신음을 내뱉으며, 하나하나 죽어, 땅으로 묻혔다. 갈색의 흙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어가는 그것들에게 독한 약을 뿌렸다. 번식하지 못하도록, 빨리 썩어서 흙이 되도록.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그때의 풍경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메아리가 들릴 때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혼비백산하곤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메뚜기떼와 사람들의 시체가 섞여, 점점 한 덩이의 갈색 흙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메아리 소리와 함께 들리는 모양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고 한다. 갈색의 폐허에서, 땅을 다시 일구고, 집을 짓고, 어떻게든 마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는 메뚜기떼가 찾아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구충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을의 전통으로 남기기 위해 애썼다.


이 마을에는, 묘지가 없다...


흉내쟁이라는 벌레는 노인들의 환상일 뿐이다. 아무리 구충작업을 해도, 어디선가는 반드시 메아리가 들린다. 날개를 비비는 것 같기도,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한 그것은.


그래, 노인들에게만.


젊은 사람들에게만 들리는 모스키토음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이 마을의 메아리는 노인들에게만 들린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은 축적된다. 생명을 갉아먹는다. 메아리를 들을 때마다, 노인들은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간다. 그리고 점점 더, 잘 듣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점점 메아리에 포위되다가, 결국 그 소리에 둘러싸인 채 죽고 만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가 죽던 날의 광경은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힘겹게 벌리고 있었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바람소리가 쌕쌕하고 들렸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그 소리에 둘러싸여 있었을 것이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아버지의 눈에서, 뭔가를 읽었다. 아버지의 시선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버지의 시신은 화장했다. 시신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지만, 언젠가는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다. 때때로 희미하게, 메아리 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사람의 소리 같기도, 메뚜기가 날개를 비비는 것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아버지가 죽은 방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아주 살짝, 벽지가 벗겨진 부분이 있다. 노인의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그 틈으로 갈색의 흙이 보인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에서는, 죽어가는 메뚜기 떼와,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고 했다. 구분하기 힘들 만큼. 노인들은 메뚜기 떼에 약을 뿌리고, 땅을 불태웠다. 사람과 한데 섞여 분간하기 어려운 메뚜기 떼에. 사람과 함께 죽어가는 메뚜기 떼에. 그것들은 한데 섞여, 갈색의 흙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흙으로 집을 짓고, 길을 닦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비명인지 메뚜기의 비명일지 모르는 그 소리가. 그 ‘흉내쟁이’의 소리가.


어른들이 말하는 흉내쟁이라는 건, 정말로 벌레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천장의 틈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죽던 날, 아버지가 보고 있었을 무언가가 갈색의 벽에 겹쳐져 보인다. 갈색의, 메뚜기 떼가. 그것들이 눈을 부릅뜨고 이쪽으로 몰려오려 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을 한 그것들이.

나는 그것들에게서, 나를 노려보는 메뚜기의 몸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토요일 연재
이전 16화3호선 종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