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길

명절 괴담

by 허아른

1. 귀성열차


명절이 시작되는 날, 고향에 내려가는 열차를 탔다. 예매를 거의 당일에 하는 바람에 표를 찾는 데 꽤 고생했다. 취소표가 없나 계속 새로고침을 하다가, 겨우 자리가 났기에 자리 확인도 하지 않고 얼른 결제했다.

열차에 타고 보니 그 자리는 4인 동반석이었다. 나는 통로 쪽에 앉았고, 다른 세 자리는 예매한 사람이 없었던 건지 텅 비어있었다.


행운이다.

편하게 갈 수 있겠네.


예매를 미리 할 수 없었던 데는 사정이 있다. 고향집이 공사 중이라서, 명절 때까지 공사가 끝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집이라 누수가 생겨서 바닥을 다 뒤엎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전화통화할 때도 음질이 안 좋았다. 지지직거리고, 잘 들리지 않아서 큰 소리로 여러 번 다시 말해야 했다. 바닥 공사와 휴대폰 음질이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파나 뭐나 그런 문제겠지.


엄마는 뭐 하러 오냐고, 우리도 이 참에 놀러 갈 테니 그냥 거기 있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아쉬워하는 건 분명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기에 이번 명절인 집에 가만히 있을 계획이었다. 명절 전날 밤,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좋은 소식이었다고 해야 할까 나쁜 소식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가 전한 소식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어찌어찌 명절이 되기 전에 공사도 끝나고 바닥도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공사가 마무리되어서인지 통화 음질도 깨끗했다. 역시 그건 공사 때문이었던 거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일 내려올 거지?”하고 물었고, 나도 엉겁결에 알았다고 말해버렸다.


그런 사연으로, 밤을 새우며 승차권 예매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낮에 자는 버릇은 없지만, 밤을 새우고 기차에 탔더니 너무 피곤했다. 자리도 넓고 편해서, 다리를 쭉 뻗은 채 잠을 청했다.


그런데 겨우 잠이 들려고 할 때,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크게 들려왔다.


과자 봉지를 부스럭거리는 소리.

한 움큼 과자를 입에 집어넣고 씹는 소리.

와작와작.


너무 신경 쓰였지만, 과자 먹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를 하는 것도 좀 그렇다. 지나치게 민감하게 군다고 되레 비난받을 것 같다.


참자. 과자를 영원히 먹을 수는 없을 테니.


하지만 과자 먹는 소리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이번에는 아기 울음소리마저 들리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아기를 달래는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잠자긴 틀렸나.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경이 소리 나는 쪽으로 집중되었다. 조금씩, 아기를 달래는 소리에 울먹이는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아기를 달래는 여자의 목소리.


조금씩

들린다.


여자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너희가 그렇게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는 죽을 수밖에 없어...”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말았다.

뭐지, 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애한테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나는 두리번거리며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척 통로를 가로질러갔다. 도대체 그 가족이 어디에 앉아있는지 확인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도, 그 가족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칸에서 아기를 동반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왔을 때, 발밑에 와작, 하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 자리 밑에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2. 호텔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밤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벨을 눌렀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지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지직거리는 소음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사가 아직 안 끝났어. 그래서 그 김에 여행이나 갔다 올란다고 얘기했잖니?”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새벽차를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너무 피곤했다. 잠이 쏟아진다.


어쩔까 하다가, 인근 호텔을 잡았다. 비즈니스호텔이었는데, 다행히 깔끔하고 내부도 최신식이었다.


옷장에는 하얀 가운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일단 옷장을 열고 외투를 벗어 안쪽에 걸었다. 하필이면 외투도 하얀색이다.


옷장문은 반투명해서, 문을 닫고 똑똑 두드리면 안쪽의 불이 켜진다. 냉장고가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건 봤어도, 옷장이 이렇게 생긴 건 처음 본다.


씻고 가운으로 갈아입을까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한참 잠에 빠져들어있는데, 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가 툭툭 벽에 부딪히는듯한 둔탁한 소리.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뭔가 부딪히는 소리

아니

노크 소리인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 난 쪽을 돌아보았다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옷장 안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뭐지, 옷장 안에, 누군가 숨어 있어...?


잘못 본 거겠지, 잘못 본 거겠지 하면서 억지로 눈을 감았다. 어쩐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나는 눈을 감은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햇빛이 창가로 들어오기 시작해서야 나는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옷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 본 것이 맞았다.

하얀 옷들 사이에 걸려 있는 까만 가운이, 반투명한 유리에 번져서 사람 그림자처럼 보였던 것이다.


3. 다시, 열차 안


돌아가는 열차는 운 좋게 아침 시간으로 잡을 수 있었다. 거의 기적이었다. 또 4인 동반석이라는 게 신경 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아기가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에, 어른 여자와 남자가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는 누가 왜 취소한 걸까.


4. 홈, 스위트 홈


겨우 집으로 도착했다. 하루를 비웠을 뿐이지만, 한겨울에 보일러를 꺼놓고 나갔다 온 탓에 아무래도 집은 냉골이었다.


일단은 좀 씻고 싶다.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가, 조심조심 수도꼭지를 틀었다. 샤워기를 틀자마자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나는 샤워기를 도로 잠그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엉엉 울면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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