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날 밤 아이의 아빠가 자수했다. 그는 며칠간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눈이 퀭하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빛으로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형사들의 조사 끝에 그는 아이가 실수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이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부검 결과 아이의 팔과 다리가 부러진 것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아이의 아빠가 전부터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해 왔다는 주변인의 진술을 토대로 아이를 때려죽이고 시체를 나무속에 숨겨 불에 태워 증거인멸을 노렸다고 보고 증거를 찾았다. 검시에서 아이의 부패 정도로 죽은 지 이 주일은 넘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얼굴만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게 이상하다는 말이 떠돌았다.
형사는 그의 이 주일 전 행적을 조사했다. 형사에 따르면 그는 사건을 저지르고 집을 떠나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의 방이 갑자기 숲으로 변한 걸 보고 하루 만에 그렇게 되었다고 신고한 것이다.
아이의 아빠는 정신 이상 감정을 받았다. 아이가 원래부터 이상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무를 이용해 자꾸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다면서. 자신이 살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죽여 놓고 끝까지 아이 탓으로 돌려버리는 죽일 놈이라고 욕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에 이 사건은 점차 잊혀 갔다.
잊힌 시간 속에서 아이의 아빠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오랫동안 버려져 부서지기 직전인 집으로 돌아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우연히 들른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온몸에 담쟁이덩굴에 감싸인 채로 아이의 방에서 죽어 있었다. 두 팔은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하늘을 향해 꼿꼿이 들고 있었다. 발버둥을 심하게 쳤는지 담쟁이덩굴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이의 아빠가 자수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형사가 수림을 찾아왔다. 수림은 형사와 함께 화장장에 따라갔다. 화장장 관계자 외에는 아이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날은 화장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파란 하늘 아래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수림은 폭력을 당하는 아이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되었다. 자신도 가정 폭력에 아파트 밖으로 내던져진 아이였으니까.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였을 뿐이었다. 수림은 살아남은 자신이 더 행복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부모님의 다툼을 지켜봐야 했으니.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자기들도 기적의 아이 부모라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의심했는데. 너 정말 식물 초능력자더라. 이번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받았어. 고맙다.”
형사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을 툭 던졌다.
수림은 이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지쳤다. 아예 식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 볼까 싶었다. 자신이 떨어질 때 나무가 받아준 순간 운명이 바뀐 것 같았다. 그게 아무리 우연의 산물이라고 해도.
‘나무가 자신을 선택한 건 아닐까?’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설마……. 수림은 다른 사람들처럼 착각하지 말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진짜 식물 초능력자는 저 아이였을 것이다. 아이의 아빠가 식물이 자신을 위협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시체는 화장되어 은행나무 밑동에 뿌려졌다. 다음 날부터 한여름의 숲에서는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수림은 일주일마다 그곳을 찾아 노랑 달맞이꽃을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