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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주 Oct 31. 2023

아이의 숲

4

  수림은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 서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처음에 느꼈던 서늘한 기운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그때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담쟁이덩굴의 나뭇잎들을 흔들었다. 그 순간 수림 앞으로 나뭇잎 한 장이 떨어져 내렸다. 수림은 발밑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웠다. 눈앞을 스쳐 간 나뭇잎의 색깔이 얼핏 보였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그 나뭇잎에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니, 글자 모양대로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원래라면 가장자리부터 말라가기 시작했을 텐데 이건 나뭇잎 가운데가 마른 것이 누가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누가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거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림은 아이의 방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나뭇잎 외에 또 뭐가 더 있나 훑어보며 찾아다녔다. 수림의 손에 있는 나뭇잎에는 ‘요’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앞에 다른 글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요’는 대체로 문장의 끝에 붙는 어미니까. 다른 글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참 동안 무릎이 아플 정도로 엎드려 돌아다닌 끝에 모두 다섯 장의 나뭇잎을 찾아냈다. 그것을 바닥에 늘어놓자 ‘도‧와‧주‧세‧요’라는 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누가 보낸 건지는 모르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이 방에서 발견된 거라면 아이가 더 걱정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형사에게 나뭇잎을 보여주며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는 수림이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수림이 진짜라고 했지만, 형사는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하루 만에 방이 식물에 둘러싸인 걸 보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의심할 거면 왜 데려온 건데요? 저도 바쁘다구요.”

  수림이 투덜거렸더니, 형사는 그제야 뒷머리를 긁적이며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수림은 다시 아이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을 둘러싼 식물은 더 많이 자라서 숲이 되어 있었다. 한여름이라서 식물들은 무슨 괴물이라도 된 듯이 무서울 정도의 성장을 자랑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서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가고 있는 줄기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방 안이 깊은 숲속에 있는 듯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아이는 이 방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지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결국 수림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수림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위급한 상황이라 자신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누가 나타나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헛된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수림은 볼에서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그 느낌과 함께 잎들이 부딪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늦은 오후의 햇빛이 희미하게 비쳐들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식물에 관심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을 헤쳐나가 방 안 깊숙이 들어갔다.

  반대편 벽에 도착해서 보니 창문 주위로 담쟁이덩굴 줄기가 뻗쳐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줄기가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창문 주위의 벽에 금이 가면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수림이 발로 벽을 차니 금방 부서지고 말았다. 부서진 벽 너머로 담쟁이덩굴 줄기들 사이로 난 작은 틈으로 힘겹게 빠져나갔다. 담쟁이덩굴 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수림이 산 위로 걸어 올라갈수록 줄기가 흩어지며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담쟁이덩굴이 사라져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다 눈앞에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 숲에서 빛이 들이치는 공터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백 년도 더 된 듯 보이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까맣게 타서 쓰러져 있었다. 나뭇가지와 줄기는 검게 그을렸고 나뭇잎은 거의 없었지만 몇 개 있는 것마저도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노랗게 말라 죽었다.

  그런데 부러진 나무 밑동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나무에서 담쟁이덩굴이 다시 보였다. 쓰러진 나무 기둥을 담쟁이덩굴이 감으면서 올라갔다. 밑동만 남은 나무 기둥 주위를 담쟁이덩굴이 몇 겹이나 둘러쌌다. 그곳은 수풀로 만들어진 새의 둥지 같았다. 세상의 그 어떤 찬바람도 뚫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수림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한 발짝 떼기가 힘들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오싹한 한기에 어깨를 움츠리고 팔로 몸을 감쌌다. 밑동 안에는……, 아이가 담쟁이덩굴을 이불 삼아 덮고 잠을 자듯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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