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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May 12. 2023

어머니 보러 가는 길

1천 킬로미터의 추억

어머니 팔순 잔치를 위해 경기도에 다녀왔다. 

첫날 형님 댁에 들렀다가 잠시 볼 일 보러 다녀왔고, 다음 날 팔순 행사장에 들러 어머님과 온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니 이틀 동안 왕복 1,000km 정도를 운전한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두 차례씩 명절 기간 동안 위아래를 오갔지만 3일간 다녔던 거리를 이번에는 이틀 만에 다녀오려니 체력이 부치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렸는지 삭신이 쑤시기 시작하고 위에서 눈꺼풀이 내려오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눈에 힘을 주고 싶었지만 다시 들어 올릴 여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어머니 뵈러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만났던 밤하늘과 별


돌아보니 행복했다. 그 길. 코로나로 인해 뵙지 못했던 어머니와 형님, 누님들과 조카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다. 3년 만에 만났음에도 바로 지난주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가족이란 이런 것인가. 지지고 볶고 엉겨 붙다가도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슬플 때 함께 뭉쳐 기어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였다.      


유쾌한 사람들! 우울증 환자도 우리 가족이랑 일주일만 지내고 나면 레크리에이션 강사도 할 수 있다. 웃다가 갈비뼈가 나갈 수도 있다.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매년 업데이트되는 아재개그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나라도 당해낼 수 없는 어머니의 개그! 참으로 세상은 넓고 뼈그맨은 많다.      




한참을 웃으며 회포를 풀고 나니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늘 아쉽기만 하다.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음식점 화장실에 들렀다. 심란한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소변기 위 벽을 바라보는데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시구가 눈에 띄었다.      

'효'.     


BC카드 [효] 편에 나오는 '효도하는 법'


살아계실 때 해야 하는 것, 효. 

오늘 어머니는 자식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줬다고 말씀하셨다. '효'일까? 

내리사랑, 올리효도라는 말이 있다. 그저 받은 내리사랑을 조금 올려드린 것뿐이다. 마음의 빚을 조금 갚아 드린 것뿐이다. 애달파하는 어머니를 꼬옥 안아들이고 뒤돌아서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몇 번을 뒤돌아보며 안녕을 빌어주는 사람들. 차에 타고도 창문을 내려 거듭 건강과 부의 기원을 빌고, 또 아쉬워 창문을 올리지 못한다.      


너무 늦으면 부산 길 막힌다며 어서 가라고 손짓하시는 어머니. 눈으로는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신다.

추석에 또 뵙기로 약속드리고 차를 몰아 도로에 들어섰다. 백미러로 바라보니 어머니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당신을 마중 가는 길 500km, 당신을 배웅하는 길 500km.      

멀지만 멀지 않았던 그 길. 어머니가 계시는 그곳으로 향하는 길. 

팔순이라는 핑계로 3년간 안아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몸, 잡아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손. 

짧은 시간 동안 맘껏 안고, 잡고, 느끼고 왔다. 

짧아서 더욱 소중했던 시간들. 꽃등심 한 조각을 남겨 놓은 것보다 더 아쉽다.   

  

어머니, 팔순 축하드려요.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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