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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Jun 20. 2023

진돗개, 재롱이 이야기

누군가를 추억해 준다는 것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는 집안을 일으키시기 위해 시골 아랫동네에서 머슴처럼 일하신 후 차츰 돈을 모아 윗동네의 외딴집과 마당, 그리고 주변 논밭을 사서 제법 규모 있게 농사를 지으셨다. 이후 사과, 배, 밤, 대추, 앵두, 복숭아 등 유실수를 집안에 키우시면서 담벼락 대신 나무들로 집 주변을 빙 둘러 채우셨다. 그래서 계절별로 서리꾼들이 새벽마다 우리 집을 다녀가는 바람에 시끄러운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다 아는 이웃들이고 그 이웃들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확! 마! 


도둑놈들... 은 아니고 부지런한 이웃분들 덕에 본의 아니게 아침을 일찍 시작했다. 새벽 손님들이 집 가까이에 오면 우리가 키우던 착한 진돗개 '재롱이'가 목소리도 우렁차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바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주 짜증 나는 아침이었다. 저놈의 자식들이 아침 일찍 과일을 몰래 따가는 날이면 낮에는 그 집 아줌마가 자기네 음식을 가져오는 웃지 못할 상황들이 반복되곤 했다. 우리 동네에는 오래전부터 '기브 엔 테이크'라는 아름다운 문화가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 ecasap, 출처 Unsplash


어머니 팔순 잔치를 하기 위해 경기도 형님댁에 들렀을 때,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나와 재롱이 와의 추억을 형님께서 끄집어 내주셨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 재롱이가 우리 집에 왔고 진돗개 종이었던 이 아이는 머리가 영특해서 금세 주인의 마음을 읽었고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주인에게 충성을 하기 시작하자 이웃이나 낯선 사람들로부터 주인을 지키기 위해 용맹하기 그지없이 행동했다. 심지어는 마을버스가 지나가도 달려들어 짖어대곤 해서 본의 아니게 우리 동네 인싸견이 되었다. 물론 부끄러움은 항상 곁에 있던 나의 몫이었다. 


우린 늘 함께 다녔다.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부모님께서 함께 일하러 나가실 때면 나는 재롱이 와 동네 밖으로 나와 함께 뛰어다니고 같이 개울가나 언덕에 누워있다 오곤 했다. 어느 날 재롱이가 사람들에게 사납게 군다며 아버지께서 재롱 이를 묶어 놓으셨는데 하필 목줄이 천을 꼬아서 만들어진 얇은 줄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재롱이 목에 깊이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개의 목은 어느덧 상처가 깊어지고 이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나는 너무 속상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고 이내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다. 


부모님께서 일하러 나가신 낮 동안 나는 소독약을 구해온 뒤 재롱이 목에 붙어 있던 천으로 된 목줄을 끊어 내 버리고 상처 부위에 소독약으로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무척 고통스러웠는지 재롱이는 움찔거리곤 했지만 눈을 감고 꾹 참아내는 모습이었다. 매일 그렇게 소독을 해 주었다. 동물이라 그런가, 상처는 하루가 다르게 치유가 되었고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금세 아물어 버렸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개털이 자라기 시작했고 3주째부터는 제 살로 돌아왔다. 


© jagheternantonb, 출처 Unsplash


나보다 개가 더 빨리 자랐기 때문에 털로 덮인 재롱이의 몸체는 어린 내 눈에 보기에 무척 풍성해 보이고 거대해 보였다. 그때부터였다. 밤마다 내가 사라진 것이. 


형님이 아침에 일어나 나를 찾다가 문득 개집 안을 들여다보니 나와 개가 뒤엉켜 자고 있더란다. 아니 내가 재롱이 다리 위에 내 다리를 올리고 자고 있었고 재롱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함께 눈을 감고 자다가 형이 오자 깨어서 나를 핥아서 깨워주곤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재롱이 입장에서는 무척 성가신 한 남자아이였을 것 같다. 지 집 놔두고 매일 저녁 내 집에 들어와서 털도 없는 게 내 털을 이불 삼아 잠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완전 개판이... 아니라 오리지널 아바타판이 아닐까 싶다. 당시 고양이도 한 마리 키웠는데 그 아이 이름이 '나비'였다. 


재롱이가 어쩌다 내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동네 지인 아저씨의 인삼밭을 대신 지키게 하시려고 재롱 이를 임대삼아 그 아저씨의 인삼밭으로 보내 주셨다. 아버지 지인 말씀으로는 개가 우리 집에서 떨어진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울어대었다고 한다. 가끔 내가 재롱 이를 보러 그 밭에 가곤 했는데 재롱이가 한참 전부터 내가 오는 쪽을 바라보고 울부짖던 생각이 난다. 그땐 왜 재롱 이를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아버지께  요청을 안 드렸는지 모르겠다. 그 후엔 어떻게 되었지? 기억이 안 난다.

직장 근처의 애견 카페에 가면 커다란 개가 살고 있다. 그 카페의 개를 보면 우리 재롱이가 떠오른다. 나를 바라보던 그 맑은 눈과 과하게 흔들어대던 꼬리. 그리고 두 발로 버티고 일어서서 나를 안아주고 내 얼굴을 핥아 주던 그 아이의 모습. 매일 아침마다 나를 즐겁게 깨워주던 의젓했던 재롱이. 이 아이는 개들이 사는 천국에서 오늘도 힘차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겠지? 그곳에서 가끔씩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내가 재롱이를 기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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