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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바구니 Aug 17. 2023

휴대폰 배터리 교체

수명연장과 위대한 유산


아들의 휴대폰 상태가 이상했다. 

폰을 완충해도 얼마 안 가 금세 배터리가 방전되더니 이내 휴대폰이 꺼졌다. 

아들은 휴대폰 배터리를 교체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들의 휴대폰을 바꿔준 지가 한 3년 정도 된 것 같았다. 이젠 때가 되었구나 싶어 아들에게 휴대폰 교체를 제안했더니 웬일인지 조금 더 써보고 싶다고 했다. 대신 배터리를 교체하면 될 것 같다고 하기에 오늘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아들을 태우고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제품 접수를 하고 얼마 안 있어 우리 순서가 되었다. 

테크니션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니 '어떤 문제로 방문하셨냐'라고 물으시길래 아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다.

다 듣고 나더니 그 직원분도 배터리가 오래돼서 그런 것 같다며 커버를 열어보고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기왕 방문한 김에 신제품이 뭐가 있나 하고 아들과 서비스센터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제품들이 참 많이도 출시가 되었다. 휴대폰에서부터 노트북, 탭, 그리고 워치까지 다양한 시리즈가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뛰어난 성능들에 매혹되어 한참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우리 번호를 불렀다. 아쉬워하면서 얼른 테크니션에게 가니 역시나 배터리 문제라 한다. 휴대폰 배터리는 소모품인지라 2년 혹은 길어야 3년이 지나면 눈에 띄게 성능이 저하된다고 했다. 마치 배터리 안에 타임 테이블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그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성능이 저하된다니 웃펐다. 꼭 3년 후 배터리가 급방전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해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6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을 결제하고 배터리를 교체했다. 

기분 좋은 채로 집에 와서 아들이 충전기를 연결하니 초고속 충전이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고 충천 시작 후 얼마 안 있어 100% 충전이 완료되었다. 


아들은 신나 하면서 휴대폰이 완충된 상태에서 유지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잔량 시간이 10시간이 조금 넘었다. 10시간? 요즘 휴대폰 배터리는 고용량이라 제법 간다던데 휴대폰의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했으면 더 오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혹시나 하면서 내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해 보았다. 

94% 남아 있었고 유지 예상시간은 1일 6시간으로 나왔다. 대량 30시간이다. 

나와 아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묘한 표정이 오고 갔다.

아들은 곧바로 자신의 모델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고 이내 결론에 이르렀다. 


아들의 휴대폰이 3년이 지난 모델이어서 제작 당시 장착된 배터리도 용량이 적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무리 새것으로 교체를 해도 이미 태생부터 용량이 정해진 까닭에 배터리 유지시간이 더 늘지는 않는다고 한다. 

태생부터 정해진 배터리의 수명, 마치 우리가 태어날 때 정해진 수명과 유사하다고 느껴진다.




오랜만에 교회 권사님을 뵙게 되었다. 80대 중반의 권사님이신데 최근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안부를 여쭈었더니 최근 권사님께서 예배 중 쓰러지셔서 급히 병원 응급실로 가신 적이 있으시다고 했다. 심장이 뛰지를 않아 긴급히 수술을 하셨고 심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몸속에 심실보조장치를 설치하셨다고 했다. 우리는 손을 꼭 잡아 드리면서 위로를 해 드렸고 권사님께서는 환한 웃음으로 괜찮다며 답해 주셨다. 


휴대폰 수명이 다할 때가 되면 수명을 늘려주기 위해 배터리를 교체해 주듯이 우리 몸에도 수명을 늘려주는 장기를 교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의 피가 잘 순환하게 해 줌으로써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기관이 심장일 것인데, 이 심장도 때가 되면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우리는 이때 영면에 들게 된다. 심장을 교체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휴대폰 배터리처럼 완전히 태어날 당시의 상태로 복귀시킬 수는 없다. 몸의 곳곳이 이미 노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을 교체한다고 하여 수명이 처음으로 돌아가진 않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처음 출시될 때 이미 수명이 예측이 되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수명은 정해져 있고 서서히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다만 그 수명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상대적으로 길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삶의 끝인 '죽음'을 잊고 살거나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100세까지 쌩쌩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몸이 노쇠하고 기력은 쇠하지만 그 어느 세대보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세대가 시니어 세대라고 한다. 




내 어머니도 올해 80을 맞이하셨다. 

그분께 인생을 여쭈어보면 인생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내게 삶을 살아가는 법과, 사회에서 생활 잘하는 법 등 주로 인생 공부에 대해 알려주셨으나,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요즈음에는 그저 착하게 살라고만 가르치신다. 인생이 길지 않으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선하게 살면서 남을 도우라 하신다. 졸업생이 되어 돌아보니 그게 맞는 길이라고 하신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끝이 있기에 현재가 더욱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다. 

삶이 유한하기에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고, 서럽도록 찬란한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감에 따라 나 자신이 더 겸손해져야 함을 배운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돈보다 소중하고 명예보다 값진 것이 있음을 알려주고,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나를 더욱 갈고닦아야 함을 느끼게 된다. 


위대한 유산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삶을 윤택하게 하고 가정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이웃을 돕고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주는 활동이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은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자녀들을 위해 당신의 삶을 바쳤고 이웃을 돕기 위해 쌀독의 쌀을 퍼서 나누어 주셨다. 이모댁 자녀들의 학비가 모자라면 이모님 대신 학비를 지원해 주셨고, 도둑이 들면 도둑에게 뭔가를 쥐어주고 보내셨다. 문둥병자가 오면 겁내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눠주셨다. 

나는 이것이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위대한 유산이라고 믿는다. 


어머니께서 내게 물려주신 보석보다 값진 이 위대한 유산이 우리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빠의 살아온 길이, 아빠의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성장의 씨앗이 될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이 씨앗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싹을 틔워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이웃과 사회에 환원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음 세대들이 사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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