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뺑뺑이

by 따뜻한 말 한마디

성능 검토 업무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지시가 내려왔다.
그때는 몰랐다. 이 ‘한 줄의 지시’가 내 커리어의 방향을 통째로 바꿀 줄은.

“개발실 짐 싸서 사무실로 복귀해. 다른 사업부로 간 동기의 업무를 이어받아.”

하루아침에 나는 전동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새벽까지 엑셀을 붙잡는 사람이 되었다.


업무 인수인계는 형식적이었다.
그냥 욕먹으면서 배우라는 식이었다.
나는 과장급 선배에게 일대일 밀착 마크를 당했고,
하루 절반 이상을 잔소리를 들으며 보냈다.


빌어먹을 엑셀은 꿈에서도 나왔다.
꿈속에서도 선배는 나타나 소리를 질렀고,
나는 꿈속에서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대들지도 못한 채.


그래도 버텼다. 잘하면 인정받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계산이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이 업무에 투입된 이유는

팀의 가장 연장자가 “저 친구를 시켜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왜였을까. 평소 나를 예의주시하더니,
열심히 한다는 평가 때문에 만만하게 본 걸까.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내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한 첫 단추라는 것을.


엑셀 업무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또다시 변화가 찾아왔다.
팀이 조직 개편을 하면서 기능별이 아닌 제품별로 나뉘게 된 것이다.
나는 또 다른 업무로 바뀌었다.

고정된 업무를 맡아 깊이를 쌓아가던 동기들과 달리,

나만 계속 뺑뺑이를 돌았다.
묘하게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이게 회사원의 숙명이겠지’ 하고 묵묵히 따랐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했다.

이렇게 계속 옮겨 다니면 커리어에 깊이가 쌓일 수 없다.
여기저기 얇게 아는, 마치 습자지 같은 지식을 가진 ‘물경력’이 되어버린다.


동기들과도 점점 거리가 생겼다.
겉으로는 웃고 떠들었지만, 속으로는 장벽이 쌓여 갔다.
“너는 고과를 왜 욕심내? 우리가 당연히 잘 받는 거 아냐?”
동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은 잊히지 않는다.


내가 맡은 일이 빵꾸 나면 프로젝트 전체가 지연되는데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메인에서 벗어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잡무’를 떠맡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너는 시키면 다 하니까.”
그게 이유였다.

출근길마다 한숨이 나왔고, 가슴은 답답해졌다.

신입 때 불타올랐던 열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이제 프로젝트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건 단순한 배치가 아니었다.
회사가 나를 ‘유용한 사람’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뺑뺑이’는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수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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