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회사는 만만치 않다

by 따뜻한 말 한마디

신입 교육이 끝나고 나와 동기들은 부서 배치를 받았다.
하지만 각자의 부서로 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연수 코스가 남아 있었다.
이름하여 ‘생산 라인 실습’.


말 그대로, 우리 사업부에서 개발한 제품의 생산 라인에 투입되어 실제 조립을 하는 과정이었다.
무려 2주 동안, 라인 인원들과 똑같이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이어지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땐 그저 “힘들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회사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단면을 배우는 첫 경험이었다.
향후 내가 맡을 제품 개발 업무의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맡은 공정은 기능 검사를 위해 제품에 파워 코드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과정을 생산 수량만큼 반복했다.
“나는 지금 허리 디스크 두 개가 터져 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무리가 간 게 아닐까.”
뒤늦게 드는 황당한 생각이었다.
다행히 라인의 작업자들은 우리 신입사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고, 작은 실수에도 웃으며 가르쳐주었다.
낯선 현장에서 그 친절은 큰 위안이 되었다.


라인 실습이 끝난 후, 드디어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에는 주 52시간 제도도 없었기에,
선배들이 퇴근하기 전까지 신입이 먼저 자리를 뜨는 일은 없었다.
군대식 문화가 남아 있는 듯했다.


나의 업무는 ‘제품 성능 개발’이었다.
설계 파트에서 넘겨준 도면과 부품을 받아 성능을 검토하고 개선하는 일.
겉으로 들으면 멋져 보이지만, 신입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선배들이 준 도면대로 철판을 자르고, 부품을 조립해 시험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래도 단순 반복만은 아니었다.
성능 개선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로 부품 설계에 반영되기도 했다.
힘들지만 동시에 재미도 있었다.
‘아, 나도 뭔가를 해낼 수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회사 안에서 내 역할을 느꼈다.


그러나 곧 현실은 또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주로 있던 개발실은 건물의 구석에 있었는데,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비만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낡은 형광등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이상하게도 규칙적이었다.
그 규칙적인 소리 속에서, 나는 묘하게 이 조직의 리듬을 느꼈다.
명색이 대기업인데, 왜 이런 일을 신입사원이 해야 하는 걸까.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안전팀에서 지원을 요청해 왔다.
두 명이 필요하다며 막내인 나와 동기가 불려 갔다.
우리가 맡은 일은 물이 새는 천장 위에 올라가 방수 비닐을 덮는 작업이었다.

“이런 건 회사가 예산을 써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돈은 어디에 쓰는 거지?”
동기와 나눈 대화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기는 퇴사를 했다.
“대기업이 이럴 줄 몰랐다”는 말을 남기고.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회사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돈을 그냥 주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더라도, 내가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회사가 ‘사람의 집합체’가 아니라 ‘논리의 집합체’라는 걸 몰랐다.
하지만 그건 단지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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