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전장에 투입되다

by 따뜻한 말 한마디

2013년, 내가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회사는 마침 신제품 개발 기획을 막 끝내던 시기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기획의 시작이 곧, 나의 첫 전장이 될 줄은.


신입사원들은 팀 리더와 면담을 하고 맡고 싶은 업무를 이야기했다.
나는 원래 관심 있던 제품 성능을 맡기로 했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착오였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아홉 시가 열 시가 되고, 열 시가 열한 시가 되었다.
주말 특근도 당연해졌다.
말 그대로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회사에 있는 셈이었다.
입사한 지 고작 4개월, 나는 이미 애환을 가진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입사 당시의 열정은 빠르게 식어갔다.
성과 없는 개발 업무, 끝없는 야근 속에서 지쳐갔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지시 때문에 전장에서 긴장하는 군인처럼,
나도 늘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게 월급값을 하는 거지.”
스스로를 달래며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하지만 회사는 월급값만 요구하지 않았다.
야근값, 특근값까지 하라며 쉴 새 없이 사람을 갈아 넣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회사는 사람을 소모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관리하는 법도 알고 있다는 걸.
갈려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버텼다.


당시 부서에서 유행하던 농담이 있었다.
이름하여 ‘공밀레종’.
아기를 넣어 만든 ‘에밀레종’처럼, 공돌이를 갈아 만든 제품이라는 뜻이었다.
웃으며 주고받았지만, 그 말속에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점점 앞날이 막막해졌다.
몇 년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처음에는 아이디어를 내며 즐겁게 일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위에서 내려온 도면대로 부품을 만들어 시험하는 ‘시험무새’가 되어 있었다.

아마 이때가 처음으로 현타가 온 시기였다.

내가 조직 생활에 맞는 사람일까.
주변 선배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까?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시기의 어려움은 앞으로 마주할 것들에 비하면 낮은 난이도였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조직이란 결국 ‘명령이 곧 논리’인 세계라는 것을.

제품 개발이라는 전장에서는 ‘전사자’도 속출했다.
퇴사자가 이어졌고, 사업부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열 명이 넘던 팀 동기들은 절반 이상이 다른 사업부로 이동했다.
마음을 터놓을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돌아보면 나는 용기가 없었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새 출발을 하자.”
그런 결단을 내릴 용기.
신입이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끝내 그만두지 못했다.


혹시 그때 퇴사를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가정법은 부질없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지금도 내 안에 잔상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이건 단지, 더 거센 파도 앞에 서기 전의 전초전일 뿐이라는 것을.

이전 06화5화. 회사는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