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개발을 오래 하다 보면 감이 온다.
이 제품이 시장에서 빛을 볼 것인지,
아니면 단지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로 사라질 것인지.
입사 후 첫 대형 프로젝트를 끝낸 뒤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낸 나는, 곧 새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료도 없었다. 그냥 나 혼자였다.
내가 맡은 건 다름 아닌 구색 맞춤 제품이었다.
게다가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팀장에게 찍혀 있었다.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때는 몰랐다. 상사의 한마디가, 개인의 회사생활을 바꿀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걸.
하루는 팀장이 불러 말했다.
“너는 영어도 잘하니 외국 공급처랑 협업하는 이 프로젝트가 맞을 것 같다.”
“큰 프로젝트도 아니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나는 홀로 떨어져 새 프로젝트를 떠맡게 되었다.
전임자의 인수인계 따위는 없었다.
그는 퇴사 소동 끝에 HR과 협의하여 자신이 원하는 부서로 전출을 가버린 상태였다.
내가 가진 건 그가 남긴 파일뿐이었다.
가끔 전화를 걸어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호했다.
그는 본인조차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았다.
업무 특성상 저녁에 일을 해야 했다.
거래선 국가가 한국보다 6시간 늦은 시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밀린 일을 처리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화상 회의를 반복했다.
동기들은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는 프로젝트도 작은 거 하면서 뭐 늦게 가냐?”
“야근 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괜히 늦게 가지 마라.”
속에서 천불이 치밀었다.
그들은 내 업무를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주력 제품을 맡았다는 자부심 하나로 나를 깎아내렸다.
혼자 하는 일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잘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삐끗하면, 그 순간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팀장이 관심을 주지 않으면, 내 고과는 다른 사람들의 성과에 깔려버린다.
이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나는 점점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잃어갔다.
어느 순간 나는 주력 제품과 거리가 먼,
그저 구색 맞춤 제품의 담당자일 뿐이었다.
그 생활은 해가 바뀌어도, 팀이 바뀌어도 이어졌다.
어느새 7년 차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언제부터 이런 일을 해왔는지도 가물가물해졌다.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나는 ‘제품 개발자’라는 인식조차 흐려졌다.
팀의 메인을 떼어낸 나머지를 맡는, 말 그대로 잡무 담당자가 되어 있었다.
동기들과의 관계에도 금이 갔다.
급이 나눠졌고, 노는 물이 달라졌다.
나는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심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내 회사를 향한 시각을 완전히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