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라는 거대한 바닷속에서
한 사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나는 결국 해낸 셈이었다.
2019년, 나는 한 사건을 계기로 조직에서 ‘문제아’라는 프레임을 쓰게 된다.
어느 날 팀장이 불러 작정하고 나를 몰아붙였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구두로 보고까지 했던 내용이었지만, 그는 그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영업에서 임원에게 메일을 보낸 것을 보고는 나를 불러 욕설을 퍼부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에 돌아왔다.
복도 끝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하루의 애환을 달래던 순간,
계단 밑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지?”
“떨어져 볼까?”
계단 밑 잔디밭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무너진 사람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순간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원래 ADHD 기질로 다니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던 중,
의사는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진단서를 써주겠다며 강하게 말했다.
“당장 휴직이 필요합니다.”
그제야 알았다.
내 상태가 전문가 눈에도 위험할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진단서를 들고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너 정신과도 다니고 있었어?”
“꼭 쉬어야겠냐?”
그 말에서 회사와 나 사이의 온도 차를 뼈저리게 느꼈다.
며칠 후, 연구실장과 면담이 열렸다.
팀장과 여러 명이 동석한 자리였다.
“너 2개월 휴직 신청했다던데, 1개월만 쉬면 안 되겠냐?”
나는 이번만큼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 상태는 전문가도 걱정할 정도입니다. 2개월은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언짢아하던 연구실장은 마지못해 승인했다.
나는 그렇게 2개월 휴직을 받아냈다.
휴직을 위해 HR과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조직 이동도 함께 신청했다.
“더 이상 혼자 일하는 건 한계입니다. 커리어를 리셋하고 싶습니다.”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나는 잠시 안도의 숨을 쉬며 휴직에 들어갔다.
이후 연구실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 공황장애 등으로 휴직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내가 만든 변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내가 던진 돌멩이가 만든 잔물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잔물결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올 파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