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없어진 삶

by 따뜻한 말 한마디

퇴사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체감되는 시간은 아침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이 하루의 모양을 결정했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서고, 일곱 시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여덟 시까지 밀린 메일을 확인하고 하루의 일정을 세우는 일.
입사 이후 오랫동안 이어온 나의 루틴이었다.


하지만 이제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내가 일을 멈추면 법인이 멈췄는데.


퇴사 이후 내가 가장 집중하는 건, 나만의 루틴을 완성하는 일이다.
회사가 정해준 리듬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하루를 설계하는 것.
말은 쉽지만 막상 해보면 참 어렵다.
온전히 나 자신이 하루를 책임진다는 것은.


늘어지는 시간을 막기 위해 나름의 리듬을 세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와 샤워를 마치고, 8시에는 헬스장에 도착한다.
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인 뒤에는 책을 읽고, 점심 이후에는 토플 공부로 머리를 쓴다.
오후에는 잠시 쉬거나 다시 책을 펼치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연탄이와 산책을 하며 하루를 닫는다.


보기엔 단순하지만, 막상 해보면 만만치 않다.
백수가 이런 걸로 하루를 잘 보냈다고 하기엔 세상엔 더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루틴을 나와의 약속이라 생각한다.
이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다시 사회로 나아갈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실이니깐.


공황으로 인해 멈춰 섰지만,
나는 다시 내 하루를 설계하며
조금씩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루의 리듬을 잃은 사람은
결국 리듬으로 회복해야 한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가장 단순하고도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