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돌파구를 찾아서

by 따뜻한 말 한마디

우울증이 재발한 이후, 나는 회사 안의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병원에서도, 상담센터에서도 진단은 같았다.
“중증 우울증.”

나를 이 회사로 이끌었던 그 이유,
‘일에 대한 책임감’이 다시금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당시 팀장도 상담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더 이상 나를 품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상부에 보고했다.
다행히 유관 부서와 관계가 좋아,
나는 외국 거래선과의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큰 마찰도 없었고,
업무 연관성도 있어 이동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새로운 조직,
그리고 개발 업무를 손에서 놓으면서 증상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직군 자체가 달랐기에 나는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다시 출근했다.


다만, 직속상관은 가르침을 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라”는 말이 전부였다.
내가 배운 것이라곤 신입 사원도 할 법한 통관 업무뿐.
그 외의 것은 모두 내 힘으로 알아내야 했다.


막막했지만,
같은 팀원들의 도움 덕에 조금씩 기반을 쌓아갔다.
이슈가 생기면 나의 이전 경험을 끌어와 돌파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업무는 굴러가기 시작했고,
심리상담도 이어가며 불안과 우울은 점차 자리를 잃었다.


그만큼 내 심리적 체력은 회복되었고,
회사 생활은 한동안 문제없이 흘러갔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다.
출근이 즐겁다고 느꼈다.


오늘은 어떤 문제를 풀어낼까,
어떤 경험을 쌓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감각.
그 작은 성취가 하루를 버티게 해 주었고,
회사도 더 이상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시기만큼은,
나는 진정으로 회사원이라는 자리를 긍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직 이동을 한 첫 해,
인사 평가가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충격적인 결과를 들었다.

“올해는 조직 이동을 했으니 넌 C를 받게 됐어.
아직 보여준 성과가 없으니 내년을 기약하자.”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블라인드에서나 보던 이야기가
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고과 C.
연말 인센티브는 날아갔고,
입사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참혹한 패배감이 몰려왔다.

그 패배감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내가 찾았다고 믿었던 돌파구는 결국 환상이었을까.
하지만 달리 어쩔 도리도 없었다.
월급쟁이에게 진짜 돌파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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