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 대상의 여파를 딛고, 나는 악착같이 일했다.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퇴근 후엔 보고서를 다시 고쳐 썼다.
그렇게 버티는 사이,
팀에서 나를 거치지 않는 일은 없을 정도로
나의 영향력도 커졌다.
유관 부서 역시 우리 팀에 문의할 때면
항상 나를 통해서 했다.
팀의 모든 보고 장표는 내 손을 거쳐 완성됐다.
‘희망퇴직’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잦은 해외 출장을 다니며 이전의 상처도 아물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
그 시절의 나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살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임원도 나를 좋게 봤다.
업무 브리핑 중 내가 정리한 자료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조직도 커질 텐데, 너 같은 친구를 핵심 인재로 키워봐야지.”
그 말은 지난 시간의 고생을 단번에 보상받는 듯한 순간이었다.
나는 더 높은 자리를 향해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다.
그런데 그즈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그 녀석’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녀석의 이름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처음엔 단순한 감정 기복이었다.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고,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아무리 문질러도 낯선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원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공황장애로 보이는데, 정상 생활이 가능합니까?”
TV 속 연예인들이나 겪는 병이라 여겼던 그 단어가 내 현실이 되었다.
신기하면서도,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 후로는 모든 변화에 과민해졌다.
감정 조절은 점점 어려워졌고,
회사 심리상담실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지금 당장 휴식을 취하셔야 해요. 이건 생존과도 연결됩니다.”
상담사는 공황장애와 함께 오는 우울증의 부작용을 걱정했다.
결국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는 악화됐다.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위태로워졌다.
감정이 통제되지 않으니 사소한 일에도 싸움이 잦았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일상의 리듬도
모두 ‘그 녀석’에게 잠식되어 갔다.
고민 끝에 팀장에게 말했다.
“한 달만 쉬겠습니다.”
전문가가 권고한 휴식이었지만,
비전문가인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내 상태는 더 악화됐다.
결국 전문 치료를 위해 한 달 휴직을 하게 되었다.
쉬는 것이 확정된 후,
다른 사람들의 연락은 끊겼다.
나를 키우겠다던 임원도, 동료들도 조용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천천히 밀려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