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고과 C를 받은 이후,
다시는 누군가의 평가 하나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누구도 나에게 해를 가할 수 없을 정도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자고.
내가 없이는 부서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의 Key Man이 되는 것.
그것만이 그 당시의 내 목표였다.
하지만 조직 생활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가.
우리 회사는 인력 선순환의 일환으로 언론에 발표까지 하며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주 타겟은 50대 이상이었지만,
언론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3년 내 한 번이라도 고과 C가 있으면 대상에 포함되었다.
바로 내가 그 대상이었다.
팀장은 곧바로 면담을 시작했다.
“네가 저성과자로 분류되어서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었어. 생각 있어?”
“팀장님, 작년은 조직 이동 때문에 C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쩔 수가 없어. 기록상으로 보면 넌 대상자야.”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작년엔 조직 이동 때문이라며 위로하던 사람이,
불과 몇 달 만에 그 이유로 나를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나는 조직의 순리에 따라 낮은 고과를 받아들이며 묵묵히 일했다.
하지만 조직은 나의 마음가짐과는 반대로 내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조직이 원하는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나를 저성과자로 분류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밀려왔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차를 이틀 내어 화를 삭였다.
그리고 내 발로 여기를 스스로 나가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다.
주변의 고참들은 나를 위로했다.
“네가 재수 없게 걸렸구나. 회사에서는 무조건 버텨야 해.”
“힘내 임마, 회사 생활하다 보면 별일 다 겪는 거야.”
크게 힘이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폐급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붙잡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회사에서 버티며 살아남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의무라 믿었다.
다행히 희망퇴직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눈에 띄는 패널티는 없었다.
나는 이 일을 내가 더 강해지기 위한 시련이라 받아들였다.
그 후로 3년은 별일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평온은 언제나 폭풍의 전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