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회복이라는 헛된 희망

by 따뜻한 말 한마디

어렵게 얻은 휴직의 시간.
나는 대학병원을 다니며 본격적인 치료와 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별이 찾아왔다.
쉬면서 회사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하던 찰나,
이번에는 연인이 떠나갔다.


“꼭 나아서 비참한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그 시절, 나는 매일 두 번의 산책을 하며 이 말을 되뇌었다.
전 연인에게도, 회사에도 초라한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약을 꾸준히 챙겨 먹고, 심리 상담도 화상으로, 전화로 이어갔다.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치료는 분명 차도가 있었다.
증상이 조금씩 가라앉자, 나는 복귀 결정을 내렸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내가 없는 동안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좋았다.
“이제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멀리서 내 소식을 들을지도 모를 전 연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치 내가 행복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복직 4개월째, 황금연휴에 맞춰 짧은 여행을 다녀오던 중이었다.
공황이 다시 찾아왔다.
그 한 번의 발작은 남은 한 해 전체를 흔들어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공황 발작과 전조 증상,
그리고 ‘또 올지도 모른다’는 예기 불안이 나를 점점 무너뜨렸다.

반차를 내고 조퇴하는 날이 잦아졌고,
단독으로 맡은 업무는 차질이 생겼다.
팀장의 인내심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그렇게 4개월을 버텼다.
그리고 결국, 일이 터졌다.


어느 날 팀장은 내게 물었다.
“네가 챙긴 건 도대체 뭐가 있지?”
그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수차례 구두로 보고한 내용은
그의 기억 속에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졌다.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 버틴 걸까?”

순식간에 감정이 폭발했다.
휴게실의 테이블과 의자를 박살 내 버렸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사내 심리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위험한 상태니깐, 여기로 와서 잠시 쉬세요.
사내 병원에서 대학병원 진료를 바로 잡아드릴게요.”


그날, 나는 전형적인 ‘행동화(Acting Out)’의 증상을 보였다.
순식간에 ‘위험인물’이 되어버렸다.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며칠 후, HR에서 연락이 왔다.
“당분간 상병 휴직으로 전환하세요. 3개월 동안 치료에 집중하시죠.”

팀장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휴직 기간 동안 몸조리 잘하고, 복직 전에 HR과 논의해서 조직 이동을 하는 게 좋겠다.”


그 말은 곧,
“우리 팀으로는 돌아오지 마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휴직에 들어갔다.
이번엔 치료를 위한 휴식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시간이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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