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해 시작한 3개월의 휴직 생활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집과 병원만 오갔고, 다른 사람은 일절 만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고요를 일기로 옮기면서 비로소 내 감정을 확인하곤 했다.
회복은 생각보다 더뎠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는 약의 용량은 점점 올라갔다.
이전의 ‘Acting Out’은 사라졌지만, 감정의 기복 또한 사라졌다.
어찌 보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불과 지난주만 해도 거래선과 회의를 하고, 유관 부서장에게 보고를 하며
이슈를 해결하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병원과 회사의 심리상담실은 복직에 대해 신중했다.
회사에서 Acting Out이 발생했기에, 나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전문가들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 되기에 나는 그들의 뜻을 따랐다.
치료하자는 대로 치료를 받고, 상담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했다.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도 있었다.
진정한 친구를 발견한 것이다.
원래 가장 친했던 그 친구는 나의 병을 이해하려 애썼고,
무너진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묵묵히 옆에서 내 시간을 함께 견뎌주었다.
그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회복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휴직의 시간은 끝나갔다.
복직이 결정되고, HR과의 면담 후 새 부서가 정해졌다.
내가 원하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년퇴직을 앞둔 사수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며
‘이번엔 다르게 해 보자’는 의지를 다졌다.
팀장이 “잘 데려온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새 업무에도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녀석’은 나를 찾아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반차를 쓰는 날이 잦아졌다.
동료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의 이해 속에서 나는 점점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이 되어갔다.
결국 ‘그 녀석’은 우울증을 달고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약물 과다 복용이라는, 큰 사건을 일으켜버렸다.
그 일은 순식간에 임원까지 보고되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뒤에서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
응급실에서 돌아온 뒤, 팀장과 면담을 했다.
그날, 내 인생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