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가족이 있다는 것

by 따뜻한 말 한마디

다른 연재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조금 느슨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 이후로 함께 살아온 시간도 길지 않다.

그래도 내 곁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크게 엇나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몫이 컸다.


최근 치과 진료를 받다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매복 사랑니 부근에 낭종이 생겼고,
이를 제거하려면 치과병원에 입원해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비교적 단순한 수술이었지만,
병실에 누워 며칠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엇보다 공황장애 이후로

나를 늘 걱정하던 어머니가 또 한 번 걱정하게 될 것이 떠올랐다.


12월 1일, 나는 병원에 입원했고
다음 날 수술을 받았다.
매복 사랑니를 제거하고, 하악부 잇몸을 절개해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가벼운 수술이라고는 해도,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병실에서 거의 자리를 비우지 않으셨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아들의 옆에서 다시 수발을 드는 어머니를 보며
이상하게도 수술의 통증보다 다른 감정이 더 크게 남았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공황이 오지 않을까,
혼자였다면 이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을까
괜히 그런 생각도 들었다.


퇴원 후에도

어머니는 나를 위해 유동식을 만들어 주셨다.
혼자였다면 쉽게 지나쳤을 시간들이었다.

38년을 살아오며
가족이라는 감각을 이렇게 또렷하게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지금은 수술 자국도 대부분 아물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어머니와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이런 투닥거림마저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퇴사를 한 뒤에는
한국 사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일본 MBA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잠시 내려두고 있다.


멀리 혼자 있는 삶보다
내가 아플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는 삶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필요해 보였다.


비혼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유연해졌다.

언젠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
내 역할을 찾게 된다면,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요즘 나는 쉬고 있다.
하지만 그 곁에 어머니라는 가족이 있어서
하루가 조금 덜 외롭다.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1화. 나의 개딸, 연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