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로 인한 퇴직 이후, 나는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장난 자율신경계가 제 역할을 하기까지, 사회로의 복귀를 잠시 미루기로 했다.
자연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이 정리되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하루를 보내는 날도 적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브런치에 연재해 온 글들은 독자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의 글은 읽히는 글일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글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읽는 사람의 기운을 조금씩 빼앗는 글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나 스스로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었다.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간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 방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연탄이를 만난다.
소파에 앉아 TV를 켜면,
연탄이는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몸을 밀착시킨다.
그리고 꼬리를 흔든다.
연탄이의 꼬리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은
내 몸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내 팔만 한 작은 생명이
이렇게 분명하게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연탄이는 끊임없이 나에게 자신을 만져 달라고 조른다.
조금 귀찮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느끼던 내 하루에
웃음을 남겨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가 귀찮을 때는 성질을 내는,
제법 고약한 녀석이지만 말이다.
연탄이와 맞이하는 아침을 시작으로
나의 하루는 흘러간다.
퇴사를 하고 나서 처음 맞이한 아침들은 막막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시간에
나는 집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고,
내가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연탄이는 늘 내 옆에 있었다.
큰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세상에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감각을 나눠주었다.
말도 설명도 없이,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내 하루를 조금 더 버텨볼 수 있겠다고.
이제 공황도 회복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의학적인 판단이야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졌다.
연탄이가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내년 2월이면 연탄이는 다섯 살이 된다.
치와와는 다른 견종에 비해 수명이 긴 편이라
앞으로도 적어도 십 년은 더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탄이의 하루와 나의 하루는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의 남은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 역시 계속 행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