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수혜자

산 사람한테나 잘해라

by 이선남

엄마가 돌아가시고 서너 달이 지난 날, 어머님이 내게 전화를 했다.
“어미냐, 롯데로 와라.”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수신 번호를 눌렀다.
“지금 롯데로 오라고요?”
“야가, 또 딴소리 허네.”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는 당황했다. 휴대전화 일정을 확인하며 물었다.
“오늘 롯데에서 만나기로 했던가요?”
“야가 또 왜 그려. 옷 사준다며? 그리서 중국도 신청했구먼.”

‘중국도 신청했구먼.’이라는 말을 듣자, 일주일 전 약속이 떠올랐다.
“아, 중국이요? 그런데 저 지금 일해야 해서요.”
“일 끝나고 와.”


일주일 전, 방정맞은 내 입은 밥만 먹어야 했다. 언제부턴가 어머님은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나는 바쁜 척을 했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계속 전화를 했다. 결국 나는 시댁으로 갔다. 삼겹살을 먹고 있을 때, 어머님이 말을 꺼냈다.

“노인복지관에서 중국에 간다는디, 나는 안 간다고 혔다.”
“왜요?”
“괜히 중국 갔다가 빙판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혀 봐라. 괜히 병원비만 들고,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추운디 뭐 던다고 나간다냐? 생각만 해도 꺽정스럽고만.”

그러면서 빨간 패딩을 두 손으로 여몄다. 문제는 그 여민 손짓이었다. 어머님이 몸서리를 치며 패딩을 여미는 모습이, 겹쳐 보이는 엄마와 포개졌다.

시어머님과 엄마는 다르다. 어머님은 하얀 피부에 짧은 생머리다. 요가와 등산, 수영까지 매일 운동을 하지만 몸집이 크다. 반면 엄마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였다. 삼백육십오 일 논일에 밭일, 남의 일까지 하며 삐쩍 말랐다. 그런데도 귀신에 홀린 듯, 시어머님이 엄마처럼 보였다.

“어머님, 보일러를 좀 돌리세요. 그리고 그 옷은 시숙님 총각 때 입었던 옷 아니에요? 지퍼도 고장 난 것 같은데, 이제 이런 옷도 좀 버리세요.”
“야가, 또 어믄 소리 허네. 오리털이라 이 옷이 얼마나 따뜻한데 왜 버려!”

“저희 친정엄마도 그랬어요. 멀쩡한 옷이라고 이모들이 입던 옷만 입고, 우리가 그렇게 여행 가자고 해도 일해야 해서 안 된다, 외할머니 돌봐야 해서 안 된다. 그렇게 안 된다고만 하다가, 겨우 예약했던 제주도도 결국 못 갔잖아요. 제가 우겨서라도 가야 했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님이 말했다.
“야,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산 사람한테나 잘해라!”
“그러니까 어머님은 기회 있을 때 중국 가세요. 이참에 옷도 하나 사 드릴게요.”


일을 마친 나는 롯데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어머님이 오라는 매장으로 갔다. 어머님 가방 안에는 이미 고른 옷이 들어 있었다.
“얼마인가요?”
카드를 내밀며 물었다.
“이백육십구만 원입니다.”
“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점원이 동그란 눈을 슴벅거렸다. 그 옆에서 어머님도 나를 빤히 바라봤다.
“카… 카드 한도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말까지 더듬으며 다시 카드를 내밀었다.


백화점을 나와 시어머님을 태우고 시댁으로 향했다. 뒷좌석의 시어머님은 종이 가방을 보며 싱글벙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엄마도 그랬다. 저렇게 연신 웃었다.

엄마가 항암 치료를 받을 때였다. 일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 친정집에 갔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여니, 엄마가 거실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다섯 벌의 옷이 위아래로 짝을 맞춰 놓여 있었다. 누가 이렇게 입으라고 해 둔 것 같았다.
“엄마, 이거 누가 사줬어?”

뇌 손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엄마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나는 단박에 알았다.
“아들이 병원 다니면서 입으라고 사 줬구먼?”

몸도 가누지 못해 누워 있던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서 엄마는 나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안 잤고? 그리서 아들이 최고라고? 뭣이 최고여? 딸은 밤새 엄마 안고 화장실 들락날락거리느라 잠도 못 자 죽겠고만. 희봉이 다시 와서 싹 다 빨아 놓고 가라고 혀! 이렇게 널브려 놓고 가면, 나보고 이 시간에 와서 밥하고 빨래까지 하라는 겨? 희봉이 이 자식이 정신이 있는 겨, 없는 겨?”


그 옷들을 다 입어 보지도 못하고 떠난 엄마에게, 옷 한 벌 안 사 준 나는 짜증을 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어머님이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삼십만 원이었다.
이 돈이라도 받으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해졌다.


지금도 시어머님은, 그때 비싼 옷을 사서 내가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 줄로만 알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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