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에 나는

흰 봉투

by 이선남

2001년 9월 2일, 큰아이를 낳았다.

주가 지났는데도 병원에서 퇴원을 못했다. 이유가 궁금했는지 큰어머님이 문병을 왔다.


그때 병실에 계시던 시어머님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 머리까지 나온 걸, 친정엄마가 소리를 질러서 제왕절개를 했어요.”
남편이 두 손을 모아 공 모양을 만들며 거들었다.
“아기 머리둘레가 요만 해요. 생후 석 달 크기래요. 자연분만을 했으면 자궁이 파열….”
시어머님이 말을 잘랐다.
“아비, 네 머리는 더 컸다! 그래도 병원 안 가고 잘만 낳았어!”

시어머님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내 고개는 바닥으로 더 내려갔다. 큰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질부가 애를 쑥쑥 잘 낳을 줄 알았는디, 제왕절개를 혔다고 혀서 뭔 소린가 했네.”


그날로 나는, 친정엄마 때문에 제왕절개를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말은 결혼식 이야기로까지 미끄러져 갔다.
“딸이 결혼하는데 만 원 한 장 안 쓰는 친정엄마가 어딨냐?”


퇴원하지 못한 건 제왕절개 자리에 덧이 나, 고름을 여러 번 짜냈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다시 꿰맸다. 독한 약을 먹는 동안 모유 수유도 못 했다. 그때까지 엄마는 전화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퇴근 후 병실로 온 남편이 말했다.
“장모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
“왜요?”
“처가에서 며칠 더 조리를 했으면 해서.”


결혼 전,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대학교까정 나왔는디, 무쉰 애가 피임 하나도 못 허냐?”
서운함이 남아 있던 나는 말했다.
“뭐 하러 가요. 시골집은 에어컨도 없고 불편해요.”


그날 밤,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딸아, 엄마 왔어.”
가을볕에 그을린 얼굴, 광대뼈가 도드라져 있었다. 먼지 냄새가 묻은 옷자락이 바스락거렸다. 엄마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옴매, 뜨신 물도 콸콸 나오네!”
한참 뒤 수건을 두른 채 나와 식판을 열었다.
“왜 죽을 남겼다냐?”
엄마는 호박죽을 말끔히 비우고 남편 이불에 누웠다.
“방이 따습고 좋구먼.”


남편이 돌아간 뒤, 나는 엄마를 흔들었다.
“애 낳을 때 왜 아비한테 소리 질렀어?”
엄마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니 눈깔은 돌아가서 흰자만 보이는데, 니 시어미는 기다리라 허고…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한마디 혔다. 너 죽일 셈이냐고.”


나는 악에 받쳐 쏟아냈다.

“고3 끝나자마자 공장 가라 했잖아. 졸업식도 못 갔어. 대학 간다니까 아부지는 재떨이 던지고, 등록금도 안 줬잖아. 결혼식 때 준 돈이랑 퇴직금은 또 어디에 썼어?”


그날 밤, 나는 침대 위에서 울었다. 엄마는 그 아래 벽에 기대어 밤을 샜다.


아침 일곱 시, 인터폰 소리에 눈을 떴다. 침대 아래, 가지런한 이불 위에 흰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만 원짜리 세 장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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