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간의 여행

아부지 생전에만

by 이선남

“인제, 인나!”

허리춤에 돈가방을 메며 엄마가 말했다.

추석이라고 모인 우리는 거실에 누워 엄마를 바라봤다. 추석 후유증이 심한 나는 한쪽 눈만 실눈으로 떴다. 남동생이 대표로 물었다.

“엄니, 왜?”

“아니, 니 아부지가 거기 가자고 혔잖여.”

우리의 시선이 아버지에게로 옮겨 갔다. 이번에도 남동생이 물었다.

“아부지, 어디요?”

“무… 무…”

아버지가 말을 더듬자 남동생이 끼어들었다.

“아버지, 물이요?”

“아니, 희… 희겨.”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발음이 어눌하다. 문득 여름에 희경 언니와 나눴던 무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주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건설 관리자로 일하던 곳이다.

“아버지, 무주요?”

“응!”

남동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장인어른 생신이라 처가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남편도 당직이라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긍게, 니가 인나!”

“내가 왜? 나도 친정에 왔으니까 좀 쉬게. 오늘은 왜 딸기밭에 안 나가? 원래 박 여사님은 365일 일하시는 분 아니었어?”

“잉, 거기 간다 혀서 다 혀놨지.”

“엄마, 자식들이 온다면서 음식을 해 놔야지. 왜 일하고 있어. 어제 시댁에서 와서 저녁 장만하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저녁은 무슨, 잡채랑 다 우리 아덜이 했더만.”

나는 얼굴이 붉어져 보조하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시댁에서 여덟 시간이나 서서 전을 부쳤다고도 덧붙였다. 그 때문에 허리가 아파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했다.

엄마는 허리에 멘 돈가방을 휙 던지며 말했다.

“글믄, 자라. 실컷 자빠져 자. 니 아부지 생전에만 가믄 되니께.”

‘니 아부지 생전에만 가믄 되니께.’ 그 말이 머리에 콕 박혔다.

아버지가 걷지 못하고 치매까지 온 지도 벌써 오 년이 넘었다. 당뇨까지 심해져 아버지는 대부분 누워 지낸다. 어제부터 아버지는 줄곧 잠만 자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엄마, 진짜!”

“허허허, 갈 판여? 글믄 시영 아부지도 얼능 인나.”

엄마는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아버지 옷을 재빠르게 입혔다. 나도 화장을 하고 아버지 휠체어를 차에 실었다.

막 나서려는데 남편이 자기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휴대전화와 차량 스피커를 연결해 주었다.


나는 백미러로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듣고 싶은 노래 있으면 다 말해.”

“그거지, 그 뭐냐, 거시기 있잖여.”

엄마의 애창곡 ‘아빠의 청춘’을 틀자 엄마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오메, 신기허다잉. 핸드폰 노래가 차 속에서 펑펑 울리는고만.”

신나는 건 거기까지였다.


귀성객들 차로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갔는데 세 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군산 바닷가였다. 엄마는 자다 깨 바다를 보며 외쳤다.

“야, 무주 바닷가 참 좋다.”

“무주 바다가 아니라… 엄마, 무주 말고 선유도 갈까?”

“그려, 아무 데로나 가!”

“시영 아부지, 인나 봐. 바다여. 좋지?”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주… 주거야… 혀.”

엄마는 자식들 앞에서 왜 죽는다고만 하냐며 아버지를 꾸짖었다.

방정맞은 내 입이 말했다.

“엄마, 언제는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며?”

엄마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다행히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아녀, 인자는 아부지 없으면 안 디야. 느그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아부지 없으면 무서워서 엄마는 못 자.”


선유도로 가는 길에 엄마는 그날 전화를 했던 이유를 말했다.

“내가 너한테 아부지 죽었으면 좋겠다고 전화혔잖여. 딸기밭에서 일하는디 아랫집에서 전화가 왔잖여. 느그 아부지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고. 집에 오니 거실이 온통 똥 천지여. 치매 심한 느그 외할머니한테 지팡이를 막 휘두르고 있더라. 아흔아홉 먹은 할머니한테 말이여. 그때는 느그 아부지 죽이고 싶었어야.”


네 시간 만에 우리는 선유도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었는데 휠체어가 없었다. 남편 차로 옮겨 싣느라 깜박한 것이다.

“엄마, 휠체어를 내 차에 놓고 왔네.”

“어마, 글믄 애비가 실고 가 버렸네. 허허허.”

다시 식당 앞으로 가 플라스틱 의자에 아버지를 앉혔다. 엄마와 아버지를 두고 나는 주차장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욕을 하고 있었다.

“아부지, 왜 그래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플라스틱 의자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를 등지고 있었다.

등이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물었다.

“엄마, 왜 웃어?”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웃고 있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도로에서 여섯 시간, 사진 찍는 장소로 가는 데 삼십 분, 사진 찍고 돌아오는 데 한 시간, 젓갈을 고르는 데 삼십 분, 밥 먹는 데 한 시간, 차로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그 아홉 시간이 엄마 생에 마지막 여행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