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알이 꼴리는 애도

시어머니와 여행을 다녀온 뒤

by 이선남

“아버지, 할머니 것까지 입금했어요.”

남편은 웃었고, 나는 그 웃음의 이유를 끝내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내 방식의 평화였기 때문이다.



3년 전, 큰아들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무심코 나는, 나랑 가는 것 보다 할머니랑 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큰아들은 그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그럼, 할머니 모시고 가족여행 가는 건 어때요?”

“아니, 왜?”

“외할머니랑 해외여행 안 간 게 후회된다고 하셨잖아요.”

큰아들의 말에 당황했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번 돈까지 가족여행에 쓰겠다고 했다.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일단은 구정이었고, 시어머님과 여행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 결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미 시어머님은 여행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싱가포르 여행이 시작되었다.

출발 비행기 좌석부터 문제였다. 나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시어머님이, 왼쪽에는 남편이 앉았다. 그러면서 시어머님과 남편은 계속 대화했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검지를 펴서 입술에 갔다가 댔다. 조용히 좀 하라는데 남편은 계속 웃었다.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뭐가 웃겨요?”

“어미, 너는 말도 못 하게 허냐?”

시어머님의 한마디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왼쪽과 뒷좌석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행 첫날 아침, 로비에 작은아들과 어머님이 나오지 않았다. 방에 올라가 보니 어머님이 옷을 고르고 있었다. 너는 뭐 했냐는 눈짓을 하니 작은아들이 말했다.

“분명, 어제 두 시간 동안 옷을 고르셨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옷을 봐달라고 하세요.”

어머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서 옷을 꺼내고 있었다. 왼손 약지 손가락의 진주반지가 눈에 띄었다. 큰아들 돌 때 들어온 금으로 내가 해준 반지다. 순간 뜨끔했다. 그때 엄마는 시어머님을 부러워했다. 본인은 실가락 은반지도 없다고 한탄했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고 가방 주변의 옷을 정리했다.


어머님은 사진 찍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한 곳에서 몇십 장을 찍고 꼭 확인 후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루지 체험을 하러 갔다. 여기서 루지는 바퀴 달린 썰매였다. 핸들과 브레이크로 속도를 조절해 내려가는 놀이였다. 남자들은 고급 코스를 타러 갔다. 시어머님과 나는 일반 코스인 정글 코스에 줄을 섰다. 시어머님이 루지에 타려고 하자 내가 설명했다.

“어머님, 핸들은 이렇게 잡고 발로 속도를 조절해야 해요.”

“야는 내가 그것도 모르겠냐?”

어머님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출발해 버렸다. 나도 뒤따라갔다. 출발한 지 10분도 안 되었다. 길 한복판에 거꾸로 멈춰 선 어머님 루지가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 달리는 사람들을 피해 최대한 어머님 곁으로 갔다. 문제는 내 루지를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님, 핸들을 오른쪽으로 이렇게 돌려 보세요.”

“호호, 내가 왜 거꾸로 있냐? 호호호”

“지금 웃을 때가 아니에요. 위험한 상황이라고요.”

길이 내리막이라 뒤에서 계속 사람들이 내려왔다. 날은 덥고 정글이라 담당하는 사람이 올 수 없는 곳이었다. 내가 소리치며 설명해도 시어머님이 애써 팔을 움직여도 어머님 루지는 꼼짝도 안 했다. 나는 왼쪽 다리를 뻗어 어머님 루지에 걸쳤다. 그러곤 어머님 루지 방향을 돌렸다. 내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조금씩 여러 차례 방향을 돌리니 다시 원상 복귀가 되었다.

“아고, 다시 내려간다잉!”

그러고도 나는 방향 돌리기를 몇 번 더 해야만 했다. 목적지 저편에서 세 남자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무슨 일 난 줄 알고 걱정했잖아!”

“아녀, 겁나게 재밌고만! 호호호.”

어머님은 웃었지만, 흠뻑 젖은 내 눈은 남편 눈을 피했다.


지친 나는 호텔에 돌아와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잤다. 시어머님은 아이들과 맥주까지 마시며 밤새 이야기 하느라 한숨도 안 잤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렸다. 닷새 동안 본 진주 반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돌잔치가 끝나고 엄마가 말했었다.

“느그 시어미 한복 차암 이쁘더라!”

그 한복은 우리가 해 준 것이었다. 구정이라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내가 삼례에 가자고 하니 남편은 눈이 많이 왔으니 다음에 가자고 했다. 결국 내 생트집으로 삼례 집에 갈 수 있었다. 선산으로 가서 얼마 안 된 아부지 묘를 살폈다. 절을 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니 시어니 모시고 해외로 차암 잘도 댕기더라!”


3년이 지나고 작은아들이 제대했다. 작은아들까지 시어머님을 모시고 일본 여행을 가자고 했다. 형 따라 돈까지 낸다고 했다. 속마음이 또 튀어나왔다.

“너 어릴 때 누가 키웠어?”

눈을 부릅뜨고 따지듯 내가 물었다.

“갑자기요?”

당황한 작은아들은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이런 상황을 웃어넘기려 했다. 나는 소리 높여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엄마가 저축은행 다니고 힘들 때 너 누가 키웠냐고?”

“삼례 할머니랑 할아버지가요.”

“맞아, 넌 절대로 잊으면 안 돼!”

남편 말대로 내가 못 돼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배알이 꼴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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