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하나

장례식 다음 날, 삼례에서

by 이선남

엄마 장례식을 마치고 다음 날, 요양병원에 갔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간식도 준비했다. 병원 입구 간호사실에 들렀다가 병실로 갔다. 간병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안부를 물었다.

“이제 엄마는 잘 걸어 댕겨?”

뒤돌아보니, 엄마 왼쪽 옆 침대의 할머니였다. 엄마가 갑자기 호흡이 나빠져 응급실로 옮겨졌을 때, 그날 병실에는 나만 왔다. 그 할머니는 말을 좋아했다.


한 번은 일요일에 손녀가 점심을 도우러 왔다. 맞은편에 앉은 손녀는 할머니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그때 손녀가 “할머니, 밥 먹을 때는 말 안 하면 안 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고마웠다. 덕분에 엄마는 눈을 감고 있어도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진지한 눈을 보며 나는 대답했다.

“아마, 엄마는… 지금쯤이면 잘 걸어 다닐 수 있을걸요?”

“응, 잘되었네. 그런데 엄마는 너무 잠만 자!”

고개 숙여 인사하고, 할머니 말이 끝나기 전에 병실을 나왔다.


삼례 마트에 갔다. 날은 덥고 끈적거렸다. 아부지가 좋아하는 대패 삼겹살과 시원한 맥주를 골랐다. 머릿속은 배 터지게 먹고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계산대 직원이 포인트 번호를 물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친정집 전화번호를 말하자, 점원이 안부를 물었다.

“요즘 할머니가 바쁘신가 봐요. 잘 안 오시네요?”

‘아마, 엄마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셨을걸요.’

고개를 푹 숙이고 상자에 삼겹살과 맥주를 담았다. 차에 타자 긴 한숨이 나왔다. 서둘러 시동을 켰다. 분명 아버지는 몇 시간 전부터 현관문을 열고 의자에 앉아 있을 것이다. 밖을 내다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삼례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양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불렀다.

“아―바―디!”

“어!”

아버지가 왼손을 들자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울지는 못했다.

주방으로 들어가 대패삼겹살을 구워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다. 반주로 맥주 한 캔도 마셨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러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시커먼 남자가 마당에 서 있었다.

“엄마야.”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쳤다. 문을 잠그려 했지만 잠기지 않았다.

“아부지! 아부지!”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 방으로 달려갔다. 텔레비전 소리를 최대로 켜놓고 아버지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부지, 얼굴이 시커먼 남자가 마당에 와 있어요.”

“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누웠다. 혹시나 싶어 거실로 뛰어가 가방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지갑을 열어 보니 돈은 그대로였다. 그 남자는 도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아버지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문을 잠그고 불까지 켜둔 채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 집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사라진 것은 없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 남자는 쓸모없는 것들만 가져갔다. 빈 병 박스, 부서진 서랍장, 쓰레기까지. 우리가 버리려고 내놓은 것들뿐이었다.

엄마 장례식 전날, 친정에 모였을 때 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부지, 우리가 먹고 밖에 놓은 빈 병 누가 치웠어요?”

“아… 아니.”

“요양보호사 언니가 치웠어요?”

“….”

요양보호사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우리 집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갔다. 그 남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밤이었고, 장례식으로 몹시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몇 주 뒤, 요양보호사 언니가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며 낮에 잠시 아버지를 부탁했다. 그때 삼례 집 앞에서 언니를 만났다.

“언니, 병원 안 가셨어요?”

“응, 이제 가려던 참이야.”

그때 그 남자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깡마른 몸에 봉두난발,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이었다.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쓰레기를 집어 들었다. 요양보호사 언니가 말했다.

“응, 그거 가져다 버려.”

“언니, 아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엄마가 밥을 주고 허니께, 자가 와서 다 치워 줘.”

수염도 깎지 않은 청년은 히죽히죽 웃으며 자전거에 쓰레기를 싣고 사라졌다. 그는 훔친 게 아니라, 엄마가 준 밥에 대한 보답을 몇 달째 하고 있었다.


아마 엄마는 그에게 식사 때 숟가락 하나를 내준 것뿐이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엄마는, 하늘나라 어딘가 이사 간 곳에서 여전히 밥을 나누며 살고 있을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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