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날도 아닌 하루하루

그때는 몰랐다

by 이선남

19년 전, 친정에서 살 때였다. 큰아이는 여섯 살, 둘째는 세 살이었다. 직장이 한 시간 거리라 아침만 해 놓고 출근했다.

“흐아앙, 엄마 아앙.”

“동연아, 왜 그래?”

큰아이가 울며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숨넘어가게 ‘엄마’만 불러댔다. 시계를 보니 오전 아홉 시였다. 사무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어린이집에 있어야 할 큰아이가 전화를 한 것이다. 외할아버지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니 으매 도망갔다니까. 인제 동생이랑 둘이 살어야 혀!”

“아버지!”

회사에 있다는 것도 잊고 소리를 빽 질렀다. 아침에 큰아이가 일어나지 않자 아버지가 또 장난을 친 것이었다.


퇴근을 일찍 한 나는 딸기밭으로 향했다. 딸기 하우스 안에는 엄마 혼자였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 놓고 딸기 포장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부지랑 애들은?”

“…….”

귀가 잘 안 들리는 엄마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딸기 포장하기에 바빴다. 다시 말하려다 말고 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마침 자전거를 탄 아버지가 오고 있었다. 앞 보조 의자에는 작은아이가, 뒷자리에 큰아이가 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널 때였다. 자전거가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다리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도착할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아부지, 술 드셨어요?”

작은아이를 안아 내리며 따지듯 말했다. 딸기 하우스 안에 들어서자 엄마가 호통쳤다.

“할미가 말했지, 할아버지 술 잡수셨응께. 낼 사라고 혔냐 안 혔냐?”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떼를 썼고 아부지는 딸기 포장을 하다 말고 슈퍼에 갔다고 했다. 슈퍼에 간 아부지가 오지 않자 엄마는 딸기를 따다 말고 혼자 포장을 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원하면 언제든 뭐든 다 해줬다. 아이들 입가와 옷에는 초콜릿 자국이 묻어 있었고, 새로 산 장난감을 조립하는 얼굴이 유난히 밝았다. 마음껏 고르고 먹은 것이다.


한 번은 야근을 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배가 뒤틀려가고 암것도 못 헌다잉.”

놀란 나는 하던 일을 제쳐 두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픈 엄마는 없고 아이들만 있었다. 약봉지를 내려놓으며 큰아이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병원 가셨어?”

“아니, 회관.”

“회관에 왜?”

내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엄마는 바로 회관에 갔다고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밤새 십 원짜리 화투를 치고 왔다. 큰아이 말에 따르면 작은아이가 할머니들의 화투를 방해했고, 할머니들이 돌아가며 작은아이를 봐 주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작은아이가 외할머니 화투를 가져가 자꾸 다른 할머니들에게 보여줘 돈을 몽땅 잃었고, 어떤 날은 다른 할머니가 작은아이에게 화를 내 싸움이 났다고 했다. 그 뒤로 엄마는 여러 날 회관에 못 갔을 것이다. 방해꾼 없는 날을 엄마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며칠이 지난 금요일 저녁, 남편이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때 우리는 주말부부로 몇 주 만에 만나는 참이었다. 나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식당으로 갔다. 남편이 식당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웬일이래요?”

“장모님이 시커먼 다른 애들을 데리고…… 아니, 좀 당황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영문을 모른 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안고 있는 아이와 아버지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이가 분명 내 아들이었다. 단지 아침과는 다른 빡빡 대머리였다. 스님처럼 속이 훤히 비치는 대머리였다.

“엄마, 애들 머리가 이게 뭐야?”

“뭐시, 을매나 시원허냐?”

“엄마, 이런 건 나한테 허락받고 깎아야지!”

“뭐 던다고 이런 걸 허락씩이나 받냐?”

그날 나는 내내 짜증을 부렸고, 엄마는 아부지와 반주까지 곁들여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부지가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고, 아이들이 아부지가 사 준 초콜릿을 마음껏 먹고, 엄마가 방해꾼 없이 화투를 치고, 두 분이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던 날들. 이 아무 날도 아닌 날들이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다.

금요일 연재
이전 11화아홉 시간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