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딸기

울면 될 수 없는 것

by 이선남

“아부지, 엄마랑 경미네로 오세요.”
낮고 빠른 목소리로 내가 읊조렸다.

“너 무섭게 왜 그러냐?”

남편이 그렇게 말한 건, 내가 가끔 혼잣말을 하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혼자 대화 한다. 주말에 친정에 가면 개동이 줄 죽을 끓인다. 해가 질 녘이면 현관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 딸이 왔으면 저녁을 해 놔야지. 이제 오면 어떻게 해. 이제껏 딸기밭에 계신 겨?”

그러면 남편은 또 무섭게 왜 그러냐고 한다.

우리는 아버지 첫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여동생네로 가는 중이다. 나는 아부지에게 이어서 말했다.

“내일 아부지가 경미네로 못 오실까 봐요. 유튜브로 찾아봤거든요.”
“법륜스님이 안 그러냐? 영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다닐 수 있다고.”

“당신도 찾아봤어요?”

“아니,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지금도 법륜스님 강의 들어요?”

“응, 매일 듣지.”
나는 뜨끔했다. 언젠가 부부 동반 모임에서 남편은 강의를 듣게 된 이유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삼 년, 그러니까 천 번쯤 들었다고도 했다. 그때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얼마나 걸려?”
차량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응, 십 분 후에 도착이야.”

통화를 끊자 남편이 물었다.
“큰형님이랑 다 오셨대?”
“네, 우리만 오면 된대요. 그나저나 경미는 좋겠어요. 연예인 같은 자상한 제부에, 두 아들 인성 바르지. 새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딸 중에 제일 시집을 잘 갔어요.”
“경미는 예쁘잖아.”
“아, 맞네! 그럼 나는 못생겨서 당신 만났고?”
“너는 나 만나서 사람 됐지.”


엄마는 마흔세 해 전에 여동생을 낳았다. 그날 옆집 볏짚에 불이 났고, 엄마는 불을 끄고 여동생을 낳았다. 할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며 화를 내고 가 버렸다.


도착한 여동생 집은 남한산성이 보이는 고층 아파트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롯데타워도 보였다. 현관에 들어서며 내가 말했다.

“와, 운동장이 따로 없구먼. 인라인 타고 다녀야 하는 거 아녀?”

휘둥그레진 눈으로 대리석 바닥을 지나 주방과 방들을 훑었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랑 아부지가 보셨으면 굉장히 좋아했겠다.”

작은언니가 말했다.
“그만 좀 울라고 했잖아! 너 때문에 아부지가 엄마한테 못 올라가!”

나는 눈물을 닦았다. 텔레비전 쪽을 가리키며 엄마 목소리를 흉내 냈다.
“인자, 여기만 깨까시 부치먼 되겠구먼!”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십 년 전 큰언니가 처음 집을 샀을 때, 엄마와 아부지가 왔었다. 큰언니네는 텔레비전이 있는 벽만 회색 벽지로 했다. 집을 다 구경하고 밥을 먹으러 나가려던 찰나, 엄마가 “인자, 여기만 깨까시 부치먼 되겠구먼!”이라고 말했었다. 우리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 나게 웃었다.

여동생이 제부에게서 전화를 받고 일어서며 말했다.
“애들 아빠가 식당 자리 잡았다니까 나가게.”


식당에서 딸 넷은 발그레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내가 또 말했다.
“막내 따알, 집도 크고 맛난 회도 먹응게 굉장히 좋구먼!”

작은언니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얼라, 선남이 엄마 접신했네!”

내가 여동생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서울에서 엄마 수술했을 때 너네 집에서 모셨잖아? 막내 제부한테도 고마웠어.”

여동생은 맥주를 물 마시듯 들이켜더니 말했다.
“오빠가 먼저 말했어. 안 그랬으면 못 했지. 그때 엄마가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야는 막 키웠는데 나한테 잘혀!”

“하하하, 너를 막 키우기는 했지. 그래도 네가 엄마 똥받이 아니었어?”

서울 병원에서부터 삼례 집까지, 엄마는 여동생이 오면 변을 봤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때마다 토했다. 반면 여동생은 엄마를 아기 다루듯 처리했다. 예수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그랬다. 의식이 거의 없던 엄마는 여동생이 온 날, 며칠 만에 침대 시트를 다 버릴 만큼 쏟아냈다.


식당을 나와 걷는데 큰언니가 외쳤다.
“야, 우리 스티커 사진 찍으러 가자!”

내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며 말했다.
“오케이!”

작은언니가 놀라며 말했다.
“어마, 선남이가 제부랑 살더니 영어를 다 하네.”

나와 큰언니는 서로를 때리며 웃었다.

스티커 사진 숍 안에는 소품들이 가득했다. 우리 넷은 각자 하나씩 골랐다.

딸기 인형 탈을 들며 내가 외쳤다.
“와, 박인숙 씨가 평생 키운 딸기다!”

큰언니가 딸기 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이걸로 할까?”

딸기 탈을 쓰고 거울을 보는데, 그 속에서 엄마가 전국노래자랑 노래를 따라 부르며 딸기를 담고 있었다. 점점 엄마의 모습이 흐려져 고개를 돌렸다. 큰언니도 딸기 탈을 보며 울고 있었다.

여동생이 뜬금없이 말했다.
“언니, 울면 진정한 딸기가 될 수 없어.”

작은언니가 큰언니를 보며 말했다.
“맞아, 큰언니. 진정한 딸기 되기 싫어?”

큰언니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래, 우리 진정한 딸기가 되자!”

내가 외쳤다.
“그래, 울지 마! 우린 진정한 딸기가 되어야 해!”

그때 머리띠를 한 큰형부가 불쑥 들어와 말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찍고 있을 거야?”


그날, 여동생은 울면 진정한 딸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딸 넷은 울면 진정한 딸기가 될 수 없다고 여러 번 외쳤지만, 아무도 진정한 딸기가 될 수는 없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