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에서

아픈 날, 엄마는 소녀처럼 뛰었다

by 이선남

9년 전, 지금처럼 혓바늘이 생기고 코가 헐었다. 두통이 심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두통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전주 내과를 거쳐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집 전화가 울렸다. 작은언니였다.

“짠남아, 뭐 하냐?”
“그냥, 누워 있어. 왜?”
“삼례 와. 딸기잼 만들게.”


작은언니는 5월 연휴라고 친정에 와 있었다. 내 전화기가 무음이라 집 전화로 한 것이다. 천안에서 온 거라 점심만 사주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에는 예약한 병원에 가야 했다. 작은아들과 딸기밭으로 갔다.


딸기밭 하우스에 도착해 엄마와 딸기잼을 만들었다. 느닷없이 작은언니가 군산 얘기를 꺼냈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 철길을 꼭 가보라고 했다며 당장 갈 기세였다.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좀 아파서 군산은 쫌 그려!”
“아프다고 자빠져 있으면 골만 땡기지.”

엄마는 딸기를 저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절했던 나는 어느새 운전하는 작은언니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서 엄마는 높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가만히 보니께, 선남이 니가 살도 굉장히 많이 빠졌구먼. 목소리도 그렇고, 눈도 잘 안 보이는 거 가튼디?”

작은언니는 직장 이야기를 했다. 아부지는 주무시고, 조카와 작은아들은 핸드폰을 했다. 이마와 목덜미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언니, 덥지 않아?”
“에어컨 고장 났는디, 창문을 열어.”

창문을 내리자 바깥바람이 훅 들어왔다. 창문에 기대니 눈이 감겼다. 왼쪽에서는 작은언니 말이 이어지고, 뒤에서는 엄마가 내 건강을 물었다. 내 왼쪽 귀와 뒤통수가 따가웠다. 말들이 겹치자, 자장가처럼 들렸다.


“주… 주거야 혀.”

아버지의 말버릇에 눈을 떠보니 군산이었다. 이 말은 아버지가 배고프다는 신호다. 서둘러 식당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이 달랐다. 아버지는 간짜장, 엄마는 칼국수, 조카와 작은아들은 돈가스, 작은언니는 매콤한 것이 당긴다고 했다. 나는 검진 때문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꽉 끼는 청바지에 땀이 차 시원한 곳이면 어디든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두통이 올 때마다 귀와 눈 사이를 검지로 눌렀다.

작은언니가 검색하며 말했다.

“이마트는 어때?”
“언니, 철길로도 신호등만 건너면 되니까 좋네.”
“찡그린다고 뭐 시가 되간디. 니가 몸이 굉장히 안 좋구먼.”

엄마 말에 우리는 이마트에 내려 점심을 먹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작은언니가 일어섰다. 몸이 빠른 엄마와 아이들은 철길로 갔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뒤따르겠다고 했다.


아버지 식사가 끝났는데도 우리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성질 급한 작은언니 전화를 받고서야 일어났다.

“주… 주거야 혀.”

이 말은 아버지가 걷기 싫다는 뜻이다. 부축해 일으켰지만 아버지는 다시 주저앉았다. 마트에 오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다시 의자에 앉히고,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아부지, 저 철길이 일제강점기에 맹글었고 신문 종이를 실어 날랐다네요.”

정적이 흐른 뒤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신호가 두 번 바뀌었다.


30분 만에 철길에 도착하자 현기증이 났다. 작은언니는 아이들과 달고나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가 내게 물었다.

“거시기, 저거 비싸징?”

엄마가 가리킨 것은 옛날 교복이었다. 엄마와 아부지는 교복을 갈아입고 즉석 사진을 찍었다. 가방 소품까지 들고 철길 위를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엄마와 사진을 찍었다. 한 끼도 못 먹은 나는 교복 대여점 의자에 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검사 결과를 떠올리고 있었다. 관광객들 웃음소리와 엄마 웃음이 어렴풋이 들렸다. 내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잔소리하던 엄마는 어둑해질 때까지 철길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엄마가 즉석 사진을 보며 말했다.

“교복 한 번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인제 원 없다잉!”


그날로부터 9년이 지난 밤 11시 40분,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두통이 다시 시작되려 했다. 속이 따갑게 쓰라렸다. 배가 고팠지만 눈을 감았다.

지금처럼 끙끙거리고 호되게 아픈 날이면, 교복을 입고 철길을 뛰던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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