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의 바이브레이션

아빠의 청춘, 울에서 멈추지 않는 노래

by 이선남

“큰딸네 나오세요.”
“네, 여기요.”

총무인 여동생 호명에 큰언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동생은 ‘큰딸, 큰사위, 큰손자’라는 글자가 박힌 흰색 반팔티를 골라 큰언니에게 줬다. 그다음은 작은언니와 나, 마지막으로 남동생에게 각 식구 수대로 반팔티를 나눠 줬다.


몇 해 7월, 엄니 칠순 잔치로 오 남매가 모였다.

반팔티를 주고받는 우리를 보고 엄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느그들, 한복으로 싹 다 맞추라니까!”
“엄마, 한복도 다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
“글믄, 거시기 그 뭐냐 뺀드는 불렀꼬?”
“엄마가 노래는 꼭 해야 한대서 백만 원 주고 했지.”


엄니는 노래를 즐겨 했다. 논이나 밭에서 막걸리라도 마시는 날이면 음정을 위아래로 흔들며 목청껏 불렀다. 일요일 낮에 딸기밭에 가노라면 오십 미터 밖에서도 ‘전국노래자랑’과 섞인 엄니 노랫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노래방이었다. 흥이 극에 달하면 긴 호흡으로 불러댔다. 예를 들어 애창곡 ‘아빠의 청춘’을 부르면 ‘워더푸울’에서 ‘울’을 숨이 찰 때까지 늘였다. 듣는 우리가 먼저 숨이 막혔다.


다시 칠순 날로 돌아와 여동생과 엄니의 대화를 듣던 작은언니가 말했다.
“누가 알면 팔순 잔치인 줄 알겠어.”

엄니는 이 년 전 허리 수술로 칠순을 못 한 아부지랑 같이하는 거라고 했다. 그때 무심코 뱉은 아부지의 ‘죽어야 혀’라는 말버릇이 부부싸움으로 번졌고, 엄니는 “자식들 다 모인 날에 왜 그런 소릴 하냐”며 화를 냈다. 그 사이 오 남매와 열 명의 손주들은 부스럭대며 옷을 갈아입었다.

연회장에 도착하니 화려한 꽃장식과 과일, 삼단 떡 케이크가 우리를 맞았다. 나비 병풍 위 플래카드에는
‘이동구 선생, 박인숙 여사 고희연’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야무진 여동생 솜씨가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여동생과 엄니를 번갈아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엄니는 벙싯 웃었다.


외갓집 식구들과 시어머님까지 모이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때 큰언니가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아부지가 상금 준비했다고 안 했어?”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여동생이 이 모든 걸 했지만, 엄니랑 아부지도 뭔가 준비했을 터였다. 어쩐지 엄니가 이번에도 장기자랑을 하라고 했고, 심사위원은 아부지라고 했다.

‘나는 뭘 준비했지?’

아무것도 없었다. 급히 아이들과 상의해 남편이 노래를 부르고 두 아들은 개다리춤, 나는 막춤을 추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음치에 몸치였다.

첫 번째는 큰언니네 팀이었다. 노래는 ‘사랑의 트위스트’. 큰조카가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자, 큰언니네 가족이 똑같은 안무로 움직였다. 마이크를 돌려가며 노래까지 불렀다. 준비된 팀이었다.

그다음은 작은언니네였다. 눈이 부리부리한 작은형부가 등장하자 막내 이모가 “와, 잘 생겼다!”며 환호했다. 형부는 가르마를 넘기며 노래를 불렀고, 작은언니와 첫째 딸은 춤을 췄다. 곡이 끝나자 막내 이모가 무대로 나와 오만 원짜리를 기타리스트와 사회자에게 나눠 줬다.

“부인아, 어머니 모시고 집에 다녀올게.”

남편이 갑자기 시어머님을 모셔다드리겠다며 연회장을 나갔다. 말릴 새도 없이 우리 순서는 뒤로 밀렸다.

여동생네 차례가 되었다. 술을 못 마시는 제부는 얼굴이 벌게져 무대에 올랐다. 점잖한 사람이 관객 반응이 없자 갑자기 티셔츠를 얼굴까지 올려쓰고 연회장을 뛰어다녔다. 손뼉이 터졌다. 무대 위에서는 여동생과 조카들이 개다리춤을 췄다.

‘1등은 여동생네인가.’
나는 아직 무대에 서지도 않았는데.

남동생네는 올케가 ‘니가 참 좋아’를 불렀고, 남동생은 어린 조카와 손을 잡고 춤을 췄다. 엄니와 아부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마지막으로 밀린 우리 차례. 연회장 입구를 보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 순간 엄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워더푸우울~~ 워더푸우울~~ 아빠의 청추우운~~”

엄니의 바이브레이션이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나를 제외한 남매 식구들이 무대로 나와 각기 다른 춤을 췄다.


이런 날조차도 나는 늘 한 박자 늦었다. 그날따라 엄니의 바이브레이션이 유독 짧게 느껴졌다.

금요일 연재
이전 15화철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