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는 낭만주의자

먹지도 못할 풀떼기와 시디신 귤

by 이선남

아부지는 낭만주의자다. 이를 증명하는 이야기가 세 가지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소제목은
‘장이 없는 그대에게 먹지도 못할 풀떼기를 바치겠소’이다.

한 번은 엄마가 배가 아프다며 내게 전화했다. 만삭으로 내 배가 남산만 할 때였다. 엄마는 위가 안 좋아 배가 자주 아팠다. 그날도 그러려니 했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일하러 나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모님, 지금 수술 들어가셨어.”

엄마는 맹장 파열 상태였다. 복막에 염증까지 번져 수술하지 않았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남편이 엄마 전화를 받자마자 친정으로 달려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 일로 나는 엄마가 사경을 헤맬 때 자빠져 낮잠이나 자던 딸년이 되었다. 그런 나를 살려 준 건 아부지였다.


그날 저녁, 죄인처럼 병실 문을 열었다. 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 나를 보지도 않고 혼잣말을 했다.
“시상 아까운 것이, 먹지도 못 허는디 돈 쓰는 거신디.”

엄마가 가리킨 것은 꽃이 활짝 핀 철쭉 화분이었다. 병원비 한 푼 안 보태고 쓸데없는 풀떼기나 사 왔다며 혀를 찼다. 나는 화분 앞으로 다가가 분홍 철쭉꽃을 만지며 감탄했다. 엄마 옆에서 아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화분을 놓고 나왔을 뿐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소제목은
‘입도 못 대는 시디신 귤만 봐도 당신이 생각나네, 그려’이다.

중학교 때 아부지가 일본으로 일하러 간 적이 있다. 한자와 영어에 능통한 아부지는 큰 걱정 없이 떠났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한글을 잘 못 읽는 엄마 대신 내가 편지를 읽었다.

아부지는 일본 생활을 자세히 적어 내려갔다. 새벽 공기를 말했고, 집집마다 감나무 대신 귤나무가 있는 풍경을 썼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입도 못 대는 시디신 귤만 봐도 당신이 생각나네, 그려.”

여섯 장짜리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자 엄마가 말했다.
“느그 아부지 뭐라냐? 돈 벌어오라니까 쓸데없는 말만 많네.”


마지막 이야기는 엄마의 증언이다.

내가 스무 살 때 기와집을 허물고 지금의 집을 지었다. 설계부터 담장 벽돌까지 모두 아부지가 손수 했다. 집들이를 일주일이나 하던 날, 비싼 중형차를 몰고 온 부부가 있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남자였다. 호남형 얼굴에 양복바지 차림이었다.

그날 엄마는 달랐다. 늘 굵고 높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처음 보는 나긋한 말투로 손님을 맞았다. 부부가 돌아간 뒤 내가 물었다.
“엄마, 저분 누구야?”
“배 과수원집 아저씨여.”

엄마는 서랍에서 앨범을 꺼내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긴 생머리에 머리띠를 한 젊은 엄마 옆에, 양복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서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볼 법한 얼굴이었다.

엄마는 사진을 한참 보더니 말했다.
“야가 나를 굉장히 좋아혔는디.”
“그럼 이 아저씨랑 결혼하지 그랬어.”
“느그 아부지가 소를 타고 다녔어야.”

“소를 타고 다녔다고?”
“시상 바쁜디도 한가로이 소를 타고 다니더랑께.”

느긋하게 소를 타고 다니는 젊은 아부지를 상상하니, 괜히 가슴이 설렜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부지의 그 쓸데없는 낭만에 반해 결혼한 것이었다.


그 뒤로 엄마와 아부지가 싸울 때면 나는 일부러 이렇게 놀리곤 했다.
“그 배 과수원집 아저씨랑 결혼하지 그랬어.”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