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오냐?”
“엄마, 희봉이가 모시러 갈 건디?”
“니가 오라니깐.”
우리 집은 넷이고 남동생네는 셋이다. 그래도 엄마는 늘 나를 불렀다. 뒷좌석이 비어 있다는 이유로, 그날도 그랬다.
12년 전 1월 1일, 오 남매가 대천에서 모이기로 했다. 남동생이 먼저 전화해 엄마와 아버지를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여유롭게 출발하려 했는데, 엄마가 아침 일찍 전화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리가 좁아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남편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결국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대천에 가기로 했다.
친정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와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남편이 말했다.
“딸기밭 아니야?”
설마 했는데, 정말 딸기밭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 여기서 뭐 해?”
“허허허, 막 집에 갈라던 참이었는디.”
마음이 급해 나는 두 분을 차에 태워 집으로 갔다. 대신 두 아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오라고 했다. 차 안에서 왜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냐고 짜증을 냈다. 엄마는 금방 챙기면 된다고 했다.
집 안은 바깥보다 더 추웠다. 발이 시려 전기난로를 켰다. 화장실에서 나온 엄마는 빨간 내복을 입고 있었다.
“뭐 입고 갈거나?”
“아무거나 입어. 이러다 저녁에 도착하겠어.”
엄마가 펼쳐 놓은 옷은 이모들이 입던 것들이었다. 꽃무늬 바지를 입고 엄마는 차에 올랐다.
대천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딸기밭으로 다시 가자고 했다. 벌 때문에 하우스를 닫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내가 짜증을 내자 아버지는 옆 하우스에 부탁하자고 했다. 그러자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놀러 간다고 남한테 딸기를 맡긴다고?”
예전에 엄마가 차 안에서 신발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게 남편 뒤통수 쪽으로 날아가 사고가 날 뻔했다. 엄마 성미를 아는 남편은 말없이 차 방향을 돌렸다. 우리는 네 개의 하우스를 닫고서야 출발했다.
대천에 도착했을 때 다른 식구들은 이미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올케에게 가서 갓난쟁이 조카를 안았다. 큰언니가 용돈 봉투를 건넸다. 엄마는 확인도 안 하고 올케에게 줬다.
“이거 애기 내복 사 입혀라잉.”
큰언니 얼굴이 굳어 있는 걸 나는 보았다.
오후 네 시가 넘어 점심을 마치고 쉬려는데 엄마가 수산시장에 가자고 했다. 술을 안 마신 나는 괜히 불안해 자는 척을 했다. 엄마는 하우스 배추로 겉절이를 담아 준다고 했다. 그게 남동생이 좋아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수산시장에 가 있었다. 엄마는 젓갈을 고르고 김을 샀다. 계산할 때는 늘 그렇듯 내 뒤에 섰다.
저녁에는 회와 조개구이를 먹었다. 반주를 곁들인 뒤 작은형부가 말했다.
“장모님, 복불복 한 판 하시죠.”
편의점에서 맥주와 콜라를 사고, 까나리액젓을 섞었다. 까나리액젓을 마신 사람은 바다에 빠지는 규칙이었다.
남편, 남동생 순서로 잔이 돌아갔다. 남동생이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팬티만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아아—!”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외쳤다.
“아고, 아덜! 우리 아덜 어쩐디야!”
나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하하하, 희봉이다! 희봉이!”
큰언니도 나를 때리며 웃었다.
그날, 손뼉을 치며 그렇게 크게 웃었던 건 내가 까나리 복불복에 걸리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큰언니도, 나처럼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