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부한테 걸렸어?”
“응, 그렇다니까.”
큰언니가 놀라 전화를 걸어왔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던 중 급하게 건 전화였다. 남편이 연말정산을 할 때 내가 산 주식 종목까지 나온다는 걸 몰랐다. 바이오 주식이 -97퍼센트를 찍었을 때도 들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도체였다. 손실률 -40퍼센트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겠다고,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모아 산 주식이었다.
하루 전,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 아직도 주식하니?
– 넵, 반도체 관련 주식 모으고 있어요.
잠시 후 글자가 아닌 사진이 왔다. 주식 종목과 날짜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내 계획을 듣지 않고,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전부 팔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앞으로도 마이너스 주식을 쓸데없이 살 거라는 것이었다.
“너는 진짜 아부지 많이 닮았어.”
“아부지?”
“아부지 생전에 노름으로 엄마 속 많이 썩였잖여.”
작은언니는 내가 돈 개념이 없다고 했다. 남에게 쓸데없이 쓴다고도 했다. 그런 아부지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여동생은 내 게으름이 아부지의 단점이라고 했고, 남동생은 내가 귀가 얇다며 아부지가 전화 사기에 당했던 일을 꺼냈다.
가만히 보니 말은 달라도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아부지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큰언니가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너 사고 친 게 이게 몇 번째야? 너 때문에 제부 얼굴을 못 보겠어.”
기분이 상했다.
“언니, 여장부로 태어나서 그 돈 몇 천, 주식으로 날릴 수도 있지!”
“그 돈 몇 천… 내가 제부한테 미안하다. 진짜 미안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명절에 남편이 술이라도 마시면 늘 그랬다.
“장모님, 어미가 살림을 안 해요.”
그러면 엄마는 남편에게 다가가 말했다.
“혀누기, 내가 미안허네. 진짜 미안혀.”
그때도 서운했다. 친정엄마라면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오늘도 먼저 남편의 등을 두드리며 미안하다고 했을 것이다.
큰언니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생각을 좀 식힐 겸 까망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호강이 너러리가 났네.”
“뭔 똥개 새끼를 목줄 메고 댕기냐?”
회관 옆 텃밭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났다.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 했다.
“야가 가냐?”
“아녀, 갸 새끼지.”
웃거티 아주머니의 물음에 아랫집 아주머니가 답했다. 옆집과도 담장이 없는 집이라 우리 집 사정을 훤히 아는 사람이었다.
까망이는 다른 새끼들이 다 입양되고 혼자 남았다고 했다. 새까맣고 못생겨서 그랬을 거라고도 했다. 집 안에서 키운다는 말에 어르신들 입이 쩍 벌어졌다.
“뭐, 집 안에서 키운다고?”
“살다 살다, 똥이랑 오줌은 니가 다 치우고?”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두 달 되었을 때 새벽마다 울었고, 아비가 나가 보니 큰 들고양이한테 맞고 있었다고 했다. 진돗개 잡종이라며, 동물병원에서 들은 ‘블랙 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르신들은 고개를 저었다. 어미인 개동이 다리가 짧다느니, 울타리 안에만 있었는데 어떻게 새끼를 낳았느냐느니 했다.
“야, 어미가 넘어갔거나 딴 개가 넘어왔겄지.”
“그래도 저 꺼먼 개보다는, 허연 것이 보긴 낫더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까망이가 뛰기 시작하자 나도 덩달아 달렸다. 숨차게 뛰니 가슴에 걸린 것이 조금 내려갔다. 좁은 논길에서는 목줄을 풀어 주었다. 까망이는 전력질주로 달렸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나에게로 달려왔다.
생후 두 달에 엄마를 잃고, 형제들이 다 입양되고, 깜깜한 밤에 덩치 큰 들고양이에게 기습을 당해도 까망이는 이렇게 달리고 있지 않은가.
뛰어오는 까망이를 보자 웃음이 터졌다.
남매들은 모른다.
노름이 아니라, 가끔은 미래를 믿는 짓이라는 걸.
낭비가 아니라, 아부지를 닮아 마음을 쓰는 쪽이라는 걸.
게으름이 아니라, 느림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라는 걸.
귀가 얇은 게 아니라, 사람을 쉽게 믿는 쪽이라는 걸.
어르신들은 모른다.
까망이가 못생겨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개동이를 가장 많이 닮아서 남아 있다는 걸.
못났다고 좀 들으면 어떠한가. 까망이처럼 나도, 오늘은 잘 달리고 있다.
그렇게 까망이와 나는 신나게 뛰며, 어르신들의 말소리에서 조금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