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큰언니가 예비 큰형부를 데려왔다.
“절 받으세요.”
예비 형부가 큰절을 하려는 찰나, 엄마가 벌떡 일어섰다.
“잉, 나중에 허세.”
엄마는 부엌으로 나가 버렸다. 그때는 기와집이라 부엌이 집 밖에 따로 있었다. 절을 하려던 사람보다 큰언니가 더 놀랐다.
“엄마!”
불러도, 아부지는 부처상처럼 앉아 눈만 깜빡였다. 끝내 대답 없던 엄마는 부엌 문까지 닫아 버렸다. 큰절은 그날, 문밖으로 밀려났다.
평소에도 엄마는 우리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그들 넷 다 모아 놔도 시영이 하나만 못하다잉.”
엄마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큰언니는 국민학교 때부터 회장이었고, 운동회 때면 큰북을 치며 동네를 흔들었다. 그런 언니를 좋아하는 오빠들이 옆동네, 윗동네, 교회까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어디 다녀오면 과자를 한 보따리씩 얻어왔다.
큰언니가 예비 큰형부와 소개팅을 했을 때, 엄마가 물었다.
“뭐 하는 양반인디?”
“응, 인상도 좋고 매너도 좋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예비 형부가 대문 밖으로 나갈 즈음, 상자와 검은 봉지가 날아왔다. 그 안에는 쇠고기도 들어 있었다.
1년 뒤, 예비 큰형부는 경찰이 되어 돌아왔다. 그날 밥상은 삼계탕에 찰밥까지 차려졌다. 신분이 바뀌자, 밥상이 달라졌다. 문제는 먹는 도중이었다.
밥을 씹는 와중에 옆에서 딱,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해 예비 형부를 보았다.
형부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더니 엄마와 아부지를 힐끔거렸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엄마는 물론이고, 아부지도 그 소리를 못 들은 눈치였다.
놀랍게도 형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삼켰다.
그 찰밥에 돌이 들어 있었다. 그 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삼켜 버리다니. 사랑이란 건 때로, 이빨보다 단단했다.
더 놀라운 사람은 아부지였다. 아부지는 이백 밀리리터쯤 되어 보이는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예비 형부에게 잔을 내밀었다.
“이것도 못 마시면 이 씨 들안에 들어올 자격이 없지.”
아부지에게 술은 시험지였다. 취했을 때 말이 흐트러지는지,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지 술 앞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결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형부는 몇 잔이 오가도 고개를 돌린 채 잔을 비웠다. 그날 이후, 예비가 아니라, 합격자가 되었다.
이 통과의례는 제부에게까지 이어졌다. 다만 내 남편만은 예외였다. 남편과 아부지의 첫 만남 때문이었다.
스물한 살, 고시학원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때까지 아무도 나를 좋아해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4년을 따라다녔다. 남편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어서, 커피 자판기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지식이 끝이 없었다. 나는 그 큰 머리 뒤에서 후광을 보았다. 그날도 동창들과 2차를 가다 남편을 만났다.
“집에 가는 길이면 데려다 줄게요.”
“네, 집 가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차에 올랐다. 마을 입구에서 자전거가 자빠져 있는 걸 봤다. 모른 척 갈까, 아니면 집에 들렀다 다시 올까. 생각은 분주했지만 입밖의 말은 정직했다.
“저기….”
“저기 뭐요?”
“저기에 아부지가 누워 계실 텐데요.”
“저기요? 어디요? 안 보이는데요?”
남편은 당황하며 아부지를 찾았다. 그러다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차를 다시 돌렸다. 아부지는 자전거보다 더 아래, 논꼬랑에 누워 있었다. 남편은 논 아래로 내려가 아부지를 부축해 차에 눕혔다. 술에 취한 나는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걸었다. 남편은 라이트를 켠 채 뒤를 따라왔다.
그게 남편과 아부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도 아부지는 남편의 신세를 몇 번 더 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부지의 통과의례는 술에 취해 봐야 그 사람을 안다는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은 이미 첫 만남에서 됨됨이를 보여 주었으니, 그에게는 세 잔의 시험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아부지가 남편에게 건네지 않은 그 세 잔을 고맙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