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들 어디야?”
“철물점에 있는데.”
“사람들 다 왔는데 왜 거기에 있어?”
처음에는 마트만 들렀다 오려 했다. 어젯밤 과음한 남동생을 위해 이온 음료와 간식 몇 가지만 사려던 참이었다. 철물점 앞에서 작은언니가 걸음을 멈췄다. 볼 게 있단다. 호미와 삽 앞에 선 작은언니의 등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아, 희봉이한테 개동이 울타리를 부탁할까.'
남동생 희봉이는 아부지를 닮아 손끝이 야무지다. 남편과 내가 만든 울타리는 제 구실을 못 한다. 새끼들은 울타리 안팎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간다. 개동이 새끼 식빵이는 땅을 파고 나가 동네 어르신들 신발을 물어 오기도 했다. 그동안 신발값으로 나간 돈만 해도 솔찬하다. 철물점 사장에게 울타리를 물어보려는 찰나 전화가 울렸다.
“언니, 희봉이가 빨리 오랴!”
“잠깐만, 호미도 있어야 하지 않아?”
“뭘 심을 건데?”
“오이랑 상추, 방울토마토 몇 개만 심어도 몇 달은 먹어.”
“아.”
연장을 고르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누나들 진짜 답답하네. 지금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시계를 보니 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마트를 들러 삼례 집으로 갔다.
작은언니와 남동생이 모인 건 유품 정리를 위해서였다. 나는 정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엄니와 아부지가 살던 그대로의 삼례 집이 좋았다. 문을 열면 엄마는 딸기밭에 나가 있을 것 같았고, 아부지는 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것 같았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두 분이 막 다녀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겨 두고 싶었고, 작은언니는 버리자고 했다.
삼례 집에 도착하니 유품정리사 세 분이 마당에서 인사했다. 그분들은 현관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정리 잘해 드리겠습니다. 거기로 가셔서 편하게 지내세요.”
“누나들이 방 하나씩 맡아서 버릴 거 말씀드려.”
남동생 말에 큰방은 작은언니가, 작은방은 내가 맡았다. 아부지 침대를 옮기자 약봉지가 떨어졌다.
‘저녁약.’
내 글씨였다. 치매가 있던 아부지는 약 먹는 걸 자주 잊었다.
“아부지, 약 드셨어요?”
“응.”
“잉.”
그 짧은 대답들이 귓가에 남았다.
엄마가 노래자랑에 나가 상품으로 받아 온 커피 보트, 올케가 시집올 때 해 온 한 번도 쓰지 못한 솜이불, 박스도 뜯지 않은 레이스 달린 내복들을 보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이것도 버릴 거야?”
“버려.”
“이 상자는 뭔가요?”
유품정리사가 건넨 화장품 상자 안에는 약과 뜸이 들어 있었다.
“네, 엄마 것이네요.”
“봉투도 있는데요?”
유품정리사가 봉투 몇 장을 내밀었다. 봉투 겉면의 글씨가 눈에 익었다.
‘딸 중에 가장 예쁜 셋째 딸이.’
‘딸 중에 가장 우아한 딸이.’
‘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딸이.’
‘딸 중에 가장 단아한 딸….’
엄마는 내가 가볍게 던진 말들까지 모아두고 있었다.
나는 봉투를 끌어안은 채 문 앞에 주저앉았다.
“엄마!”
“야, 또 시작이네. 이분들 치워야 하니까, 울 거면 저쪽 방으로 가.”
“아이고, 내버려 둬요. 유품 정리하다 보면 다 울어요.”
유품정리사가 작은언니를 말렸다.
“엄마 돌아가신 지 4년이 넘었는데 저래요.”
“아, 4년이나 지났어요?”
유품정리사의 손은 현관 앞에서 공손하게 보내드린다는 태도를 잊은 듯했다. 마치 청소를 하듯 물건들을 마대에 옮겨 담았다. 집 안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앨범을 들어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사진 속 엄마와 아부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 이제 진짜 이사 갈 거야?”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훌쩍이자 작은언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너는 진짜, 바빠 죽겠는데….”
작은언니는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나가버렸다. 나는 앨범을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사진 속에서 엄마와 아부지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